정치사람칼럼

[발행인 칼럼] 인요한 적십자사 회장 인준, 통합과 실용을 시험하는 시간

인요한 전 의원

적십자는 정치를 넘어 사람을 살린다

대한적십자사 신임 회장으로 인요한 전 국민의힘 의원이 선출됐다. 이제 이재명 대통령의 인준만 남았다. 나는 이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 이유는 정치가 아니라 적십자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일반 공공기관이 아니다. 혈액사업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재난 현장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며,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주의 협력의 마지막 통로를 지키고, 국제 재난이 발생하면 세계 각국 적십자사와 함께 구호 활동에 나서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인도주의 기관이다. 적십자는 정권의 기관이 아니라 국민의 기관이며, 동시에 대한민국 인도주의의 얼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십자 회장을 평가하는 기준은 정치적 진영이 아니라 인도주의 역량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요한은 정치인으로 살아온 시간보다 의사이자 인도주의 활동가로 살아온 시간이 훨씬 길다. 그는 한국에서 130년 넘게 의료선교와 봉사의 길을 걸어온 유진벨 가문의 후손이다. 오랫동안 의료 현장을 지켰고, 북한을 수십 차례 방문하며 결핵 퇴치 사업에도 참여했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을 때조차 의료와 인도주의 협력의 끈을 놓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지금 대한적십자사가 마주한 과제도 이러한 경험과 맞닿아 있다. 재난은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고,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안정적인 혈액 수급은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국제사회는 전쟁과 기후위기로 대규모 인도주의 위기를 반복하고 있으며, 남북관계가 아무리 경색되더라도 이산가족과 의료지원 같은 인도주의의 문까지 닫혀서는 안 된다. 정치적 대화는 멈출 수 있어도 사람을 살리는 일은 멈출 수 없다.

물론 비판도 있다. 국민의힘 의원 출신이라는 점과 과거 계엄 정국에서의 발언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민주주의에서 당연한 절차다. 인요한 역시 “더 적극적으로 계엄에 반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인준은 그의 과거 정치적 발언을 승인하는 절차가 아니다. 앞으로 맡게 될 공적 역할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절차다. 적십자 회장을 선택하는 기준까지 정파적 충성이나 정치적 진영으로 좁혀서는 안 된다. 국제적십자운동의 가장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 중립성이다. 적십자는 어느 정권의 편도, 어느 정당의 편도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번 인준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실용과 통합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실용은 같은 편만 기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 필요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것이다. 통합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을 등용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과도 함께 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은 자신을 가장 거세게 비판했던 정적들까지 내각에 기용했다. 훗날 이를 ‘라이벌 팀(Team of Rivals)’이라 불렀다. 링컨은 정적을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에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함께하는 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제도다.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도 같은 뜻을 담고 있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획일적이지 않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가치를 위해 함께하는 것이 성숙한 공동체다. 적십자가 추구해야 할 가치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특정 정권의 기관도, 특정 진영의 기관도 아니다. 재난 앞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고, 헌혈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으며, 이산가족의 눈물 앞에서는 이념도 잠시 멈춘다. 국제 재난 현장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인도주의 정신이다.

대통령의 인준은 인요한 개인을 위한 결정이 아니라, 적십자가 정치의 울타리를 넘어 국민 모두의 기관임을 다시 확인하는 선언이 될 수도 있다.

진정한 통합은 같은 사람을 쓰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사람도 국민을 위해 함께 일하게 하는 데 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앞에서는 진영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통합이고, 그것이 실용이며, 그것이 적십자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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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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