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라이프스타일

체호프의 ‘내기’를 다시 읽으며, 의사수필가를 생각하다

체호프가 던진 질문…돈과 지식, 성공과 실패, 그리고 인간이 끝내 붙들어야 할 가치

얼마 전 한국의사수필가협회 총회에 다녀온 뒤 「의사수필가는 누구인가?」라는 글을 썼다. 임원 대화방에 올렸더니 한 내과 선생님이 이런 댓글을 남겼다. “황건 선생님과 같은 총회 자리에 참석했었는데도 저는 그냥 지나쳤던 일들을 황건 선생님은 이렇게 소중한 글로 써주셨네요. 내용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이어지는 문장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황건 선생님이 인용하신 안톤 체호프의 어록을 보니 몇 달 전 읽은 체호프 단편선 중 「내기」라는 단편이 떠오르네요. 깊은 느낌이 들어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총회의 일과 「내기」 글에서 모두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줍니다.”

댓글을 읽고 나서 나도 오랜만에 체호프의 「내기」를 다시 떠올렸다.

러시아의 의사이자 작가였던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단편 「내기(The Bet)」는 사형제와 종신형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된다. 한 젊은 변호사는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하고, 부유한 은행가는 인간이 긴 감금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결국 두 사람은 내기를 한다. 변호사가 15년 동안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견디면 거액의 상금을 받기로 한 것이다.

변호사는 긴 세월 동안 책을 읽는다. 처음에는 소설과 오락서였지만 점차 언어와 과학, 철학, 신학으로 독서의 범위를 넓혀 간다. 반면 처음에는 거액의 돈을 아무렇지 않게 걸었던 은행가는 세월이 흐를수록 재산을 잃고 불안에 시달린다. 마침내 약속한 돈을 주어야 할 날이 다가오자 살인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변호사는 상금을 포기한다. 그가 얻은 것은 돈이 아니라 돈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체호프는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깨달음인지, 초월인지, 환멸인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15년 전의 변호사와 마지막의 변호사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총회에서 만난 의사수필가들의 모습이 문득 그 변호사와 겹쳐 보였다.

원고를 써서 큰돈을 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다. 바쁜 진료와 수술, 연구와 당직 사이에서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서로의 글을 이야기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원고를 붙든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의사라는 직업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사람들이 왜 굳이 문학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일까. 아마도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체호프는 의사였다. 그는 수많은 환자를 진찰하며 인간의 허영과 탐욕, 고통과 외로움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소설로 남겼다. 「내기」 역시 돈과 지식,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이 끝내 붙들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이다.

총회에서 만난 의사수필가들 역시 비슷한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만큼이나 삶의 의미를 묻고 기록하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말이다.

그 내과 선생님의 댓글 덕분에 나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체호프는 백여 년 전에 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진료실과 수술실에서, 그리고 원고지 앞에서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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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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