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칼럼

“노화는 숙명이 아니다”…과학이 여는 회춘의 시대

<AI 생성 이미지>

저속노화(低速老化), 항노화(抗老化), 역노화(逆老化)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산다’는 어느 대학 교수의 강연 제목이다.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 200세 시대가 오고 있다. 저속노화, 항노화를 넘어 ‘역노화’ 기술로 늙은 세포를 젊은 세포로 바꾸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DNA 조작기술 중 가장 정교한 크리스퍼(CRISPR) 기술로 평균수명이 200세를 넘는 삶을 실현할 수도 있다. 현대인은 노화와 장수 과학이 파격적인 속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노화(老化)는 시간에 따라 축적되는 분자·세포·시스템 수준의 손상과 조절 실패로 인해 생물학적 회복력과 기능적 항상성이 저하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노화의 원인, 발현 과정, 결과의 복잡성은 노화의 이해와 정복 모두를 어렵게 한다. 특히 노화는 오랫동안 생물학적으로 불가역적인 과정으로 여겨졌으며, 의학적 개입의 목표도 질병 예방이나 노화로 인한 기능 저하를 완화하는 데 국한되어 왔다.

지금까지 노화는 DNA에 있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유전자에 담긴 정보가 일부 누락되거나 다른 것으로 바뀌면 세포가 제 기능을 잃고 결국 장기 손상과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사람과 생쥐에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거의 없는데도 노화가 일어나는 현상들이 관찰됐다.

과학자들은 태어날 때 물려받은 DNA 유전정보는 변함이 없지만, 이후 성장하면서 DNA에 다른 물질이 붙는 것과 같은 구조적 변화로 유전자 기능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와 같은 DNA의 구조적 변화를 후성유전체(後成遺傳體)라고 한다.

후성유전체(epigenome)는 유전체(게놈) 위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며, 노화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후성유전 정보의 총합을 말한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은 DNA 염기서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유전자가 가진 정보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조절하는 메커니즘(mechanism)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최근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는 노화를 단순한 시간 의존적 시스템 붕괴가 아니라 조절 가능한 생물학적 과정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노화 속도를 늦추거나 위험 요인을 완화하려는 항노화(anti-aging) 개념을 넘어, 노화된 상태 자체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거나 재설정하려는 적극적인 역노화(reverse aging) 전략의 등장을 촉진하고 있다.

미국 CNN과 폭스뉴스에서 ‘세계 장수 분야 100대 리더’로 소개된 세르게이 영(Sergey Young)은 온라인 수명 연장 플랫폼인 <SergeyYoung.com>을 운영하며 사람들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그리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세르게이 영은 최근 저서 <역노화(Growing Young)>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장수 과학의 최전선에서 만난 과학자·의사·기업가들과의 인터뷰와 최신 연구 성과를 정리해 건강 진단기술, 정밀의학, 유전공학, 재생의학의 발전상을 소개함으로써 젊게 오래 사는 미래(The Age of Immortality)가 가까이 와 있음을 보여준다.

유전공학은 희귀 질환 환자를 살리고 암을 정복하는 한편, 후성유전체와 장수 유전자 연구를 통해 노화 자체를 막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재생의학과 생체공학은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장기 재생 실험은 물론 노화한 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하는 연구까지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은 질병과 노화를 예방하고 멈추게 하며 역전시켜 결국 30대 몸으로 150세, 200세까지 살아가는 ‘인체 2.0 시대’ 장수혁명을 열어가는 미래를 보여준다.

국제 과학학술지 <네이처(Nature)>는 2020년 12월 2일 자 표지에 망막(網膜) 사진과 함께 ‘시간을 되돌리다(Turning Back Time)’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제목은 미국 하버드 의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의 연구논문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버드 연구진은 유전자 3가지를 녹내장에 걸린 쥐와 늙은 쥐의 망막에 전달해 시력을 회복시켰다고 발표했다. 즉 신경세포가 건강한 젊은 쥐와 같은 상태로 회춘(回春)한 결과였다.

세포 회춘의 원리는 2006년에 탄생했다. 일본 교토대학 iPS세포연구소장 야마나카 신야(Yamanaka Shinya, 1962년생) 교수는 다 자란 피부세포에 4가지 유전자를 주입해 원시 세포인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렸다고 발표했다. 수정란(배아)에 있는 배아줄기세포와 마찬가지로 인체의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고 해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 cells,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s)’라 명명됐다. 야마나카 교수는 이 연구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야마나카 교수는 iPS세포를 망막세포로 분화시켜 실명 위기의 황반변성(macular degeneration) 환자를 치료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에서는 iPS세포를 도파민 신경세포로 만들어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환자 치료에 도전하고 있다. 하버드 연구진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환자의 세포에 ‘야마나카 인자(Yamanaka factors)’라 불리는 OCT4, SOX2, KLF4, C-MYC 유전자를 주입해 바로 젊게 만드는 방식이다.

미국 하버드 의대 데이비드 싱클레어(David Sinclair, 1969년생) 교수는 2026년 2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세계정부정상회의(WGS)에서 “노화는 숙명이 아니라 점점 더 치료가 가능해지고 있다”며 “인체는 마치 컴퓨터와 같아서 프로그래밍하고 재프로그래밍하며 재부팅해 다시 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부분적 역노화는 최근 동물실험에서 잇따라 성과를 거뒀다. 예를 들면 피부를 회춘시키고 흉터를 줄였으며 근육 재생을 촉진했다. 병에 걸려 손상된 심장세포도 재생됐다. 또한 연구에서는 늙은 쥐에게 야마나카 인자를 주기적으로 발현시키면 기억력이 높아지는 결과도 나왔다. 과학계는 임상시험이 성공한다면 노인들의 간, 신장, 뇌까지 젊게 만드는 ‘회춘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전망한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싱클레어 교수와 영국 런던경영대학원의 앤드루 스콧 교수, 옥스퍼드대 마틴 엘리슨 교수는 2021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이징(Nature Aging)>에 건강수명이 1년 연장될 경우 전 세계에서 38조 달러, 10년 연장되면 367조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진은 질병 치료보다 노화 자체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다는 점을 수치화했다. 노화가 늦춰지면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생산 가능 연령이 높아지고 의료비 지출은 줄어들며 삶의 질이 개선되는 ‘복리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인사이트 에이스 애널리틱스(InsightAce Analytics)는 2023년 보고서에서 항노화 치료제 시장 규모가 2022년 5억9200만 달러에서 연평균 17.5% 성장해 2031년 24억74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프리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는 2025년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항노화 시장 규모가 2025년 7779억6000만 달러에서 2035년 1조4954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화장품이나 미용 분야에서 웰니스와 저속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았던 노화 예방이 점차 노화 치료제 개발 단계로 나아가면서 역노화 신약 개발 경쟁이 시장 판도를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대웅제약은 지난 5월 미국 기업 ‘턴 바이오(Turn Biotechnologies)’의 기술 자산과 권리를 인수해 역노화 치료제 연구개발에 나섰다. 턴 바이오는 역노화 플랫폼 ERA를 통해 늙은 세포를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부분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미약품도 역노화를 미래 성장축으로 낙점하고 2030년까지 항노화·역노화 분야 확장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 200세 시대가 온다고 하지만 이를 반기는 사람보다 길어진 노년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더 많다. 하지만 수명만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젊음까지 연장하는 역노화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기에 실제로 수명이 200세까지 연장되더라도 그리 ‘재수 없는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인공지능, 정밀의학, 유전공학, 생체공학 등 과학기술은 질병을 완벽하게 예방하고 나아가 노화된 몸 자체를 재생하는 데까지 이르러 새로운 신체를 소유하게 할 수 있다. 이제는 오래 사는 것만이 아니라 노화 자체를 예방하고 치료해 젊은 몸으로 오래 사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시대가 현대 과학을 통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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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보건학박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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