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찬일의 칸 통신⑤] 하마구치·즈비아긴체프·파블리코프스키…’황금종려상’ 삼파전

하마구치·즈비아긴체프·파블리코프스키(AI 생성 이미지, 왼쪽부터)
[아시아엔=칸/전찬일 영화평론가] 칸의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은 과연 어느 나라 어느 감독 어느 영화의 품에 안길까? 속단하기는 이르다. 폐막 이틀을 남겨둔 22일 기준, 총 22편의 경쟁작 중 아직 공식적으로 선보이지 않았고 칸 현지 평단의 평점이 나오지 않은 두세 편이 있어서다. 그들이 어떤 돌풍이나 화제를 불러일으킬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칸에서 가장 널리 참고되는 스크린 인터내셔널 소속 12인 평자들의 평가를 토대로 예측해보자. 세 편이 유력 후보로 부상해 있다. 4점 만점에 3점 이상을 받은 영화들이다. 폴란드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파더랜드>가 현재까지 최고점인 3.3점을 얻으며 일찌감치 화제몰이에 성공했다. 러시아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미노타우르>(3.2점)가 바짝 추격 중이다. 코비드-19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다시 살아나 <러브리스> 이후 7년 만에 기적적으로 빚어냈다는 신작이다. 그리고 일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올 오브 어 서든>(3.1점)이 뒤를 잇고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로 2021년 칸 각본상을 안았던 ‘젊은 거장’의 걸작이다. 삼파전이다. 하지만 그 어느 영화도 압도적이지 않다.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파더랜드>는 ‘냉전’-감독의 전작 중 하나가 <콜드 워>(2018)다-시대였던 1949년의 동서독을 무대로, 노벨문학상 수상(1929년) 대문호 토마스 만과 딸 에리카의 ‘감정적 여정’을 따라간다. 부녀는 서독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해 괴테상을 받고, 뒤이어 동독의 바이마르로 향한다. 폐허의 독일처럼 그 여정은 황폐하기 짝이 없다. 에리카의 ‘사랑’(?)하는 오빠이자 토마스 만의 아들 클라우스 만의 부고가 여정 중 전해지나, 공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일까, 가지 않는다.

흑백 화면의 다소 육중한 톤 앤 매너에 완만한 호흡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전형적 유럽 예술영화답다. 목하 유럽 최고의 연기파 배우 잔드라 휠러나 토마스 만의 현현 같은 아우라를 물씬 풍기는 한스 치쉴러의 건조하기까지 한 차분한 연기는 소재와 주제에 완벽히 부응한다. 영화가 그렇게 호평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그래서일 듯하다. <콜드 워>나 <이다> 같은 전작들의 강렬한 맛과 멋은 결여돼 있는데도, 그래 내게는 다분히 심심하게 다가온다.

<미노타우르>는 단적으로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언페이스풀>을 즈비아긴체프 식으로 변주한 작품이다. 24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다이안 레인의 ‘치명적 매혹’(Fatal Attraction)이 각인돼 있는 명품 치정 멜로영화다. <미노타우르>를 보는 내내 두 영화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두 영화 다 클로드 샤브롤의 <부정한 여인>(1969)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는데, 결정적 차이는 정치적 함의다. <언페이스풀>이 철두철미 삼각관계 치정극으로 치달았다면, <미노타우르>는 사생활의 정치성을 담는다. 영화의 배경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의 러시아 한 작은 마을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다.

전쟁 와중이지만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 아내의 외도를 눈치 챈 남자는 사설 전문가에게 요청해 그 외도 상대를 알아내 불쑥 찾아간다. 애초에 그럴 마음은 아니었으나 우발적으로 연하의 애인을 죽인다. <언페이스풀>은 살인으로 남자가 잡혀가는 장면으로 쓸쓸하게 끝난다. 아직도 난 리처드 기어가 분한 그 남편의 뒷모습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미노타우르>는 전혀 다른 결말로 나아간다. 치정으로 인한 살인이 저질러졌으나 죄과는 치러지지 않는다. 가정은 지켜져야만 한다. 살인은 없던 게 돼야 한다. 완전범죄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하다. 정치는 돈이 있어야 하고 사업은 정치가 뒷받침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랄까. 감독은 그것이 미국과 러시아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주저함도 없는 남자 주인공에게서 푸틴의 모습이 감지되는 건 그래서다. 통렬하다.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배우들도 매력적이다. 다이안 레인과 리처드 기어만큼은 아니어도….

<올 오브 어 서든>은 올 칸 마켓의 주빈국인 데다 25년 만에 경쟁작을 세 편이나 낸 일본영화의 위용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올 칸의 최대 화제작 중 하나다. 프랑스 파리에서 “치매환자를 ‘환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대하는 인간중심 치매돌봄기법”인 ‘휴머니튜드’(Humanitude)적 접근법으로 아주 특별한 요양원을 운영하는 한 프랑스 여성(비르지니 에피라)과 불치병으로 곧 삶을 마감할 일본 여성 연출가(오카모토 타오) 사이의 우정과 애정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 및 세상의 가능성을 추구·제시하는 최상급 휴먼 드라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연장 내지 발전형인 영화는 프랑스 파리를 주무대로 교토를 오가기도 하는바, 프랑스어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오가며 언어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감독의 의도가 훌륭히 구현된다. 자극적 사건 없이 인물들의 대화, 응시와 침묵 등으로 전개되는데도 3시간 10분이 넘는 상대적으로 긴 상영 시간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감독 특유의 마법은 여전하다.

그에 반해 총 17편의 장편 영화 중 무려 10편이 칸에 초대됐으며 <어느 가족>으로 2018년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바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스크린 평점 1.3점으로 최하의 평가를 받는 데 그쳤다. 그야말로 거장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졌다고 할까. <상자 속의 양>은 근 미래를 배경으로 어린 휴머노이드 로봇을 입양해 죽은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달래려는 한 부부의 드라마다. 점차 일상화되고 있는 AI 기술에 대한 불안감 내지 관심을 극화한 것일진대, <어느 가족>의 활력이나 직전작 <괴물>(2023)의 강렬함을 맛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AI 인간들이 우리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자연친화적이라는 설정이 시사하는 바가 크긴 해도 말이다. 영화는 오는 6월 국내 개봉되는바,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한 것은 나만은 아닐 듯하다.

한편 경쟁 부문에 첫 입성한 후카다 코지는 2.5점으로 호평을 받는 데 성공했다. 과거의 시누이와 올케라는 껄끄러운 사이이면서도 서로의 우정과 연대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극적 과정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위의 진단은 스크린 평점에 근거한 바, 15인의 프랑스 평자들로만 구성된 르필름프랑세의 평가는 스크린과는 적잖이 다르다. 그 매체의 최고 평점은 미국 제임스 그레이의 <페이퍼 타이거>가 2.9점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스크린에서도 2.8점으로 <호프> 등과 더불어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영화는 애덤 드라이버, 스칼렛 요한슨, 마일스 텔러 주연작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두 형제가 러시아 마피아와 얽히며 가족 전체가 빠지는 범죄 스릴러다.

제임스 그레이는 <더 야드>(2000)에서 시작해 이번이 여섯 번째 칸 경쟁 입성인데, 그동안 한 번도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해 올 칸 심사위원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만약 이번에 제임스 그레이에게 황금종려상이 주어진다면, 션 베이커의 <아노라>에 이어 2년 만에 미국영화에 칸 최고 명예가 안기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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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

'아시아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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