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칸 통신②] 연상호 감독 ‘군체’, 성황리에 세계 첫선

‘심야 상영’은 그 타이틀이 가리키듯 장르성·사건성이 강한 대중영화들이 선보이는 부문이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2008) 이후 지속적으로 초대받아온 한국영화의 단골 섹션이기도 하다. 2014년 <표적>(창감독), 2015년 <오피스>(홍원찬), 2017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과 <악녀>(정병길), 2018년 <공작>(윤종빈), 2019년 <악인전>(이원태), 2022년 <헌트>(이정재), 2023년 <탈출: PROJECT SILENCE>(김태곤), 2024년 <베테랑 2>(류승완) 등이 그간 선보였다. 올해는 총 12편의 비경쟁 부문 진출작 중 5편이 상영된다.

서울 도심 한 초고층 빌딩에서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한다. 건물은 봉쇄되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고립된다. 처음에는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던 감염자들은 점차 진화해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무리를 지어 살아 있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생명공학자 권세정 교수(전지현 분)와 생존자들은 자신이 백신을 보유한 유일한 인간이라고 신고한 사건의 촉발자 서영철(구교환)을 찾아 구조대가 기다리는 옥상으로 향한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해가고, 서영철은 감염자들을 통제·지휘하며 생존자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언뜻 식상할 대로 식상하게 비치는 간단한 줄거리만으로도 확연히 드러나는 기시감 내지 친숙함은 이 영화의 결정적 단점이자 장점이다. 당장 ‘또 좀비 타령이냐’고 투덜거릴 이들이 적잖을 듯하다. 일련의 중심인물들이 발현하는 희생 모티브에도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심지어 ‘지나치게 신파로 흐른 것 아니냐’는 불만도 없지 않다. 개별 캐릭터들의 성격화(characterization)나 인물 구도도 뻔하다는 등의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혹평은 ‘언뜻’, 달리 말해 건성으로 대충 볼 때 비롯되는 인상평일 공산이 큰 것이 사실이다. 좀비 모티브는 이 기획영화의 존재 이유이자 운명인 바, 굳이 트집 잡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성싶다. ‘봉테일’(봉준호)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연상호식 디테일에 초점을 맞추면 크고 작은 다름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 차이들이 <군체>를 <부산행>의 진화·확장으로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연장·변형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는 상당 정도 성공한다고 할까.
‘어떤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좀비 무리’(군체)는 그동안 경험한 여느 좀비들과는 제법 달라 영화를 지켜보는 맛이 있다. 영화의 핵심 빌런 서영철의 욕망 내지 ‘비전’(?)도 작금의 AI 시대라는 맥락에서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영화 역사에서 그렇게 말랑말랑하면서도 순종적인 악당 캐릭터가 존재한 적이 있는지 싶다면 그려질까. 관습적으로 비칠 수도 있을 희생 모티브는 영화를 통해 작가이자 감독인 연상호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주요 문제의식일 테다. 관련해 개인적으로 언급하고픈 배우와 캐릭터는 베테랑 조연이자 단역 배우인 김재록이 연기한 초로의 남자와, <전,란>(김상만, 2024)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다고는 하나 이번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이담희가 열연한 ‘왕따 소녀’다. 그들에게서 연상호 감독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얼굴’을 발견했다면 과장일까…. <군체>는 오는 21일 국내 개봉된다.
1탄에서 말했듯 비공식 병행 섹션 감독주간에 초청된 정주리 감독의 <도라>는 17일 오전 8시 45분과 오후 6시에, 나홍진 감독의 경쟁작 <호프>는 17일 저녁 9시 30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