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이라는 ‘이 날’을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살면,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처럼 놀라운 변화의 증거 속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누가복음 8장 1~3절은 예수님을 따르며 동행한 여성들의 이름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그들은 단지 예수님의 사역을 멀리서 구경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소유로 예수님의 전도 현장을 섬기며 함께 걸어간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출발점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게 사로잡혀 오랫동안 시달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안나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로, 당시 기준으로 보면 부와 권세를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외적 조건과 달리, 내면은 우울과 깊은 고통 속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수산나는 예수님 당시 귀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질병과 절망 속에서 삶이 무너져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들은 사탄의 지배 아래에서 영적인 문제를 앓고 있었습니다. 정체성을 잃었고, 삶의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 수 있었지만, 실제 삶은 무너지고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 이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탄의 지배 아래에서 해방되었다는 감사와 감격이 그들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격은 감정으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드려 예수님의 전도 현장에 동행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빛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 발견하고, 동시에 하나님께 발견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탄의 지배 아래서 해방된 사람,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삶의 방향을 하나님의 일에 연결하여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빛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빌립보서 2장 6~9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선명하게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36절은 그 예수님을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선포합니다.
또 히브리서 13장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님은 과거의 위인도 아니고, 단지 한 시대의 스승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며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백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이름을 부르면 흑암이 꺾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이름을 부르면 저주와 재앙이 끊어집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열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모든 문제는 끝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마귀는 떠나갑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의 힘으로 세계복음화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오늘, 이 날, 그리고 매일이 ‘메리 크리스마스’, 곧 그리스도의 날이 됩니다. 아멘.
(누가복음 8:1-3, 빌립보서 2:6-9, 사도행전 2:36, 히브리서 13:8, 마태복음 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