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권 칼럼] 말이 아닌 삶으로 증언된 복음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알고, 사랑으로 행하며, 성도의 교제 안에서 영적 싸움을 통해 끝까지 자신을 지키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생명의 복음은 말에 있지 않고 삶에 있다는 것이, 사도 요한 신학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동시에 사도 요한은 죄에 대하여도 매우 분명하게 정의하였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사랑이며,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마귀의 일을 멸하는 영적 싸움 없이는 참된 사랑을 행할 수 없습니다. 진리 밖의 사랑은 어느 날 시기와 질투, 상처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였던 디오드레베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자기 왕국을 세우려 하였고, 복음을 전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을 이단으로 매도하여 교회에서 내쫓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자처하는 유대교가 왜 오랜 세월 고통 가운데 머물러 있는지 또한 분명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나타난 흑암과 공허와 혼돈의 실체, 그리고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된 원죄를 알지 못한 채 자범죄만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고, 율법과 행위, 헌금만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창세기 3장의 원죄 문제, 창세기 6장의 네피림으로 인해 사람의 마음과 계획이 항상 악해진 상태, 창세기 11장에서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하여 약자의 것을 약탈하며 욕망의 바벨탑을 쌓은 역사,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유대교는 거짓과 악행으로 가득 차 의의 원수가 되어 그리스도의 길을 막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아니하고 전도자 바울을 심히 괴롭게 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을 내쫓는다는 이유로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 몰아붙였습니다. 심지어 바울을 죽이지 않으면 먹지도 않겠다고 맹세할 만큼 완악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께서 끝까지 증언하신 것은 오직 하나,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 능력과 응답을 두셨으며, 그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이시며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죽은 나사로도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무너질 성전을 세우는 것은 종교의 일이며,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전을 세우는 것은 제자를 세우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울지 말고, 자녀들을 위하여 우시라고 하셨습니다.
요셉과 모세, 다니엘과 사무엘, 이사야와 같은 믿음의 후대를 길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더러운 귀신과 강한 자를 내쫓으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눈 속 들보를 빼어 버리고, 침상을 들고 일어나십시오. 온전한 번제를 드림으로 블레셋을 물리친 사무엘처럼, 임마누엘 하나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벨론을 이긴 이사야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양의 피와 그 능력을 소유할 때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곳마다 영혼의 치유와 사랑, 그리고 평강이 임할 것입니다. 아멘.
참고 요한삼서 1장 13–15절, 11절, 26절, 요한일서 3장 8절, 디모데후서 3장 5절, 사도행전 13장 10절, 16장 18절, 19장 9절, 17장 3절, 요한복음 14장 14절, 누가복음 23장 28절, 마태복음 12장 28절, 사무엘상 7장 7–9절, 이사야 7장 14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