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좁은 해협에서 시험받은 여제독 아르테미시아의 리더십

“리더십은 때로 박수 소리에 취약하다”

요즘 한국과 미국에서는 여성 선장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대형 상선을 지휘하는 선장도 있고, 해군 함정을 이끄는 지휘관도 있다. 공수부대에는 여성 점프마스터가 있으며, 장군 계급장을 단 여성 지휘관도 존재한다. 이제는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을 2,500년 전으로 돌려보자. 그 시대에도 한 여성이 제국의 정규 함대에서 전함 여러 척을 이끌며 황제의 전쟁 회의에 참석해 발언권을 가졌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이름이 아르테미시아 1세(Artemisia I)다. 카리아의 여제독으로 알려진 그녀는, 살라미스 해전이라는 인류사의 거대한 전환점에서 ‘소수의견’을 남긴 인물로 기억된다.

문명 사이에 선 제독

아르테미시아는 오늘날 터키 서남부 할리카르나소스(현 보드룸 일대) 출신이었다. 그리스권 문화의 영향이 강한 해안 도시들과 토착 카리아 문화,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질서가 겹쳐 있던 공간에서 그녀는 통치자로 서야 했다. 그녀의 출생 자체가 이미 경계 위에 있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곧 역사상 가장 유명한 충돌 중 하나를 벌인다. 마라톤, 살라미스, 플라타이아이로 이어지는 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정치 질서와 문명적 자존심의 충돌이었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는 혈통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을 선택했다. 그녀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질서 안에서 권력을 행사했고, 크세르크세스 왕의 원정에 합류했다.

이 선택을 오늘의 감각으로 ‘배신’이라 부르는 것은 쉬우나, 고대에는 아직 근대적 민족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의 세계는 정체성보다 생존과 질서, 그리고 충성의 구조로 작동했다. 아르테미시아는 ‘그리스 여인’이 아니라 ‘제국의 지휘관’이었다.

전쟁 회의에서의 소수 의견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을 앞두고 크세르크세스는 장군들과 제독들을 불러 전략을 논의했다. 다수는 좁은 해협에서 즉각 결전을 주장했다. 좁은 수역에서 그리스 함대를 격파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고대 사료(특히 헤로도토스의 기록)는 아르테미시아가 이에 반대했다고 전한다. 좁은 수역은 기동성을 제한하고, 수적으로 우세한 페르시아 함대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녀는 개방된 해역에서 봉쇄와 소모전을 통해 그리스 함대를 압박하는 전략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살라미스의 좁은 해협은 결국 페르시아 함대의 혼란을 불러왔고, 그리스 연합군의 기동력과 지형 이해가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제국의 자존심은 신중함보다 빠른 결단을 원했다. 왕은 다수의 목소리를 택했다. 리더십은 때로 박수 소리에 취약하다. 전문가의 소수 의견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불편한 진실을 듣지 않는 순간, 조직은 ‘속도가 빠른 오판’을 선택하게 된다.

전투 속에서 드러난 결단

전투가 시작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페르시아 함대는 밀집했고, 퇴로는 좁아졌다. 아르테미시아의 함선도 아테네 함선의 추격을 받았다. 여기서 고대 기록이 전하는 장면은 논쟁적이면서도 강렬하다. 헤로도토스는 아르테미시아가 적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아군 편의 배 한 척을 들이받아 침몰시켰고, 이를 본 아테네 측이 그녀를 그리스 측으로 오인해 추격을 멈췄다고 기록했다. 냉혹한 선택이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 한 번의 결단이 생존을 가져온 사례이기도 하다.

같은 기록에서 크세르크세스가 “내 남자들은 여자가 되었고, 내 여자는 남자가 되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칭찬이면서도 동시에 시대의 한계를 드러낸다. 용기와 결단은 남성의 속성으로 여겨졌고, 여성의 성공은 성별의 전복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투의 물리학은 성별을 모른다. 바람과 파도는 오직 판단의 정확성만을 평가한다.

예외인가, 가능성인가

아르테미시아는 오랫동안 ‘예외적인 여성’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녀가 예외였던 이유는 능력이 희소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기회가 희소했기 때문인가. 제국은 실용적이었다. 전쟁은 더더욱 실용적이다. 필요하다면 유능한 사람을 쓰는 데 성별이 본질적 장애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아르테미시아는 상징이 아니라 전력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여성 함장이나 여성 장군을 더 이상 ‘특이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은 능력이 새롭게 생겨났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가 열렸기 때문이다. 예외가 사라질 때 평범함이 된다. 그리고 평범함은 진정한 진보다.

아르테미시아

리더십의 본질

아르테미시아의 삶은 세 가지 질문을 남긴다.

첫째, 리더는 다수의 환호와 소수의 진실 중 무엇을 선택하는가.
둘째, 위기 속에서 판단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가.
셋째, 권력은 자존심을 넘어 전문성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녀는 전투 이전에는 신중함을 권했고, 전투 중에는 단호함을 실행했다. 서로 다른 자질처럼 보이지만, 그 근원은 하나였다.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살라미스에서 무너진 것은 함대만이 아니었다. 과신과 집단적 낙관주의가 함께 무너졌다. 리더십은 힘의 과시가 아니다. 상황을 정확히 읽고, 불편한 진실을 말하며, 필요할 때는 냉정하게 결단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문적이다.

오늘의 선장들

오늘의 해군 함정에는 여성 함장이 있다. 상선의 조타실에도, 항공모함의 브리지에도 성별이 아니라 계급과 책임이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여성 선장”이라는 표현에 놀라지 않는다. 그저 “선장”이라고 부른다.

아르테미시아의 시대에는 그 이름 앞에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목표는 수식어가 사라지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결국 시간의 불확실성을 통과하는 항해술이다. 바다 위에서는 출신도, 혈통도, 성별도 파도를 멈추게 하지 못한다. 오직 판단과 책임만이 배를 살린다.

아르테미시아는 두 문명 사이에, 남성과 여성의 경계 위에, 승리와 패배의 경계에서 결단했다. 능력은 경계에 갇히지 않는다. 그리고 리더십은 언제나 가장 좁은 해협에서 시험된다.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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