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스가랴 8:19)
폐허가 된 성전을 재건해야 하는 유대 민족에게 하나님은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재판정에서는 진실하고 화평한 판결을 내리라고 하십니다(슥 8:16). 그런데 진리와 화평을 우리가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을까요?
진리는 본질적으로 배타적입니다. 진리의 빛에는 비진리의 그림자가 생깁니다. 진리에는 타협할 수 없는 명확한 선이 존재하기에, 진리를 외치는 순간 화평은 깨어지곤 합니다. 재판의 결과가 승자에게는 진리일지 몰라도, 패자는 결코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필연적으로 갈등의 그림자를 동반하는 것이 진리의 빛입니다.
어쩌면 진리와 화평은 하나로 통합되어서는 안 되는, 영원한 평행선과 같은 가치가 아닐까요? 아득히 뻗은 철길의 두 레일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두 레일이 결코 만나지 않으며, 또 만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두 레일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을 때에만 기차는 안전하게 달릴 수 있습니다. 레일의 간격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기차는 이내 탈선하고 맙니다.
세상은 진리와 화평이라는 두 레일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 두 레일은 결코 하나로 합쳐져서는 안 되며, 서로에 대한 긴장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진리와 화평이 멀어지는 순간, 화평 없는 진리는 살상무기로 변신합니다. 반대로, 진리 없는 화평은 모든 갈등을 회피하는 무책임함이나 안일함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는 화평 없는 진리를 외치던 암흑기를 지나왔습니다. 인류가 전체주의를 경험하며 느낀 절대 진리에 대한 거부감은 또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혼란은 진리 없는 화평, 즉 포스트모더니즘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신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멀어서도 안 되고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는 진리와 화평 사이의 적절한 거리감은 무엇이 결정해야 할까요? 무엇이 두 레일 사이의 생명과도 같은 거리를 조율하고,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지켜낼까요? 바로 침목(枕木)입니다. 철로의 두 레일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침목이 깔려 있습니다. 두 레일의 거리를 유지하고, 레일의 어마어마한 무게와 진동을 온전히 견디는 것이 침목입니다. 성경은 그 침목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 말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인류의 모든 죄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 진노(진리)와 죄인을 향한 무한한 용서(화평)가 정면으로 충돌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두 레일 사이를 영원히 지탱하는 침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