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교육

유치원생 15명 살리고 하늘의 별 된 ‘라매불’ 40기 전주고생 3명…28년째 이어지는 ‘기억과 약속’

위령탑을 찾아 의사자 후배들을 추모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라매불 11기). 왼쪽부터 정인성, 신준섭, 장만기 등 의사자 3명의 이름이 보인다.

칠흑같은 어둠의 밤도 아니었다. 비가 내리긴 했지만, 1997년 7월 20일은 2025년 7월 20일처럼 일요일이었고, 전북 부안군 변산해수욕장에는 제법 인파가 몰려 있었다. 전주고 써클 ‘라매불(裸魅佛)’ 회원들은 2박 3일 일정으로 18일에 이곳에 도착해 20일, 사흘째이자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었다. 오전 10시경, 비로 인해 진흙밭이 된 모래사장에서 간이 축구시합을 마친 회원들은 숙소로 돌아가 샤워 전 바닷물에 들어가 진흙을 씻어낼 요량이었다.

맨 앞에 선 행렬은 축구를 제일 먼저 끝낸 전주고 1학년 막내들이었다. 그런데 이들 7~8명이 바다에 발을 담그는 순간, 대형 튜브에 묶인 채 유치원생 십수 명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오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인성이 외쳤다. “선배님들, 애들이 떠내려가요!” 그러자 라매불의 막내 고1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급류로 뛰어들었다. 한 명, 또 한 명, 또 한 명… 이들은 결국 15명의 어린이를 구해냈다. 그러나 모래사장으로 철수해보니, 회원 세 명이 보이지 않았다. 남은 회원들과 해수욕장에 있던 건장한 남성들이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수색은 허사였다. 그렇게 해서 라매불 써클 막내 회원인 전주고 1학년 신준섭, 장만기, 정인성 세 명은 생명을 잃었고, 의사자(義死者)로 기록되었다.

라매불은 현재 창립 68년이 된 전주고의 대표적인 써클이다. 변산 의사자 사고 당시에는 창립 40주년이었고, 희생된 세 학생은 40기 막내들이었다.

라매불 강령 및 회가(會歌)

‘라매불’이라는 이름은 이 써클의 강령 세 가지, 즉 ‘꾀를 벗어라!’, ‘매력 있는 생물이 되어라!’, ‘태양을 씹어먹어라!’에서 유래한다. 이 써클은 매년 여름 산수가 좋은 곳에서 선후배들이 2박 3일 또는 1박 2일로 하계수련회를 연다. 때로는 손자뻘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회원들이 모여 고담준론을 펼치고 호연지기를 기르기도 한다.

2025년 수련회는 7월 19~20일 전북 완주군 고산휴양림에서 열리고 있으며, 참석자 중 1기는 83세, 막내인 68기 전주고 1학년생은 16세로, 무려 67년 차이가 나지만 이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서로를 대한다.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다.

2025년 7월 19~20일 전북 완주군 고산휴양림에서 열리고 있는 라매불 하계수련회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후보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고 당시 해양경찰은 시신을 찾지 못했고, 마침 작전 중이던 제7공수특전단의 도움으로 다음 날 새벽에야 시신을 모두 수습할 수 있었다. 이후 선배 회원들 사이에서는 “강령 실천을 너무 강조해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고,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희생자들의 1년 선배이자 당시 함께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39기 조현상(趙賢相, 당시 17세, 현재 방송 PD)은 사고 이후 6개월 넘게 악몽에 시달렸다. 사고 다음 날 새벽까지도 정인성 군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새벽 5시 무렵 조현상은 꿈에서 정인성이 “형, 나 여기 있어. 찾아줘”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조현상은 잠에서 깨어나 즉시 군 관계자들에게 꿈에서 본 장소를 설명하며 수색을 요청했고, 놀랍게도 30분 만에 그 근처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는 이후 27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7월 20일마다 변산해수욕장을 찾아 세 의사자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러본다.

전북 부안 학생 해양수련원에 세워진 위령탑.

신준섭~ 장만기~ 정인성~

이상하게도 그날처럼, 매년 7월 20일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2025년 오늘도 전국은 극한호우에 시달리고 있다. 세 명의 의사자를 기리기 위해 전주고 교정과 부안 전북해양학생수련원에 각각 추모비와 위령탑이 세워졌다(사진 2, 3). 전주고 추모비의 추모사는 라매불 1기 김종심 회원이 집필했다.

사건 발생 사흘 후인 7월 23일 전주고에서 열린 합동영결식에는 3천여 명이 운집했고, 흐느낌의 파도가 이어졌다. 세 학생 모두 모범생에 성적도 최우등급이었던 탓에 슬픔은 더욱 컸다. 고 신준섭은 학급 1위, 전교 2위의 우수한 성적에 리더십과 의협심이 뛰어났다. 장만기는 라매불 동기 회장이었고, 급우들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친구’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정인성은 중학교 시절 학생회장을 지낸 인물로 항상 웃는 얼굴에 급우들의 인기가 높았으며, <나의 주장> 발표회에서는 전주고 대표로 출전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특히 그는 7년 치성 끝에 태어난 7대 독자였다. 정 군의 부모는 뜻밖의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의 이름으로 추모 문집을 발간했다. 최우등생 아들이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써클의 선배들과 수련회를 떠났다가 살신성인의 뜻은 고귀했으나 주검으로 돌아온 현실은 너무도 잔인했다.

1997년 11월,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이들 의사자 3명에게 ‘제14회 가톨릭 대상 특별상’을 수여하며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다시 빛낸 절절한 고백은 사건 20주년을 맞은 2017년, 같은 라매불 40기였던 김용욱이라는 동기생에게서 전해졌다. 의사자 사건 이후 전주고는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을 전면 금지했고, 라매불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당시 1997년 3월 새 학기에 40기 막내로 함께 가입했던 10명은 넉 달 뒤 사고로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사건 20주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김용욱은 의사자 3명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준섭, 만기, 인성. 나는 그 사건 후로 너희들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비록 함께한 시간이 짧았지만, 나는 고교, 대학, 미국 유학 시절 내내 너희의 삶을 대신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너희의 희생이 부끄럽지 않도록 죽을 듯이 공부했고, 마침내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너희는 고귀한 희생으로 많은 사람을 살렸다. 나 역시 그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든 너희는 밤하늘에 찬연히 빛나는 내 마음의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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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 김대중정치학교 대외협력본부장,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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