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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사죄한 고노 요헤이의 별세, 그리고 다카이치 시대의 일본

고노 요헤이(왼쪽)와 다카이치 수상

지난 17~18일 김대중재단 일정으로 부산을 찾았다.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부산 앞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바다 건너 일본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며칠 전인 6월 8일,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 일본 정치인의 이름이 떠올랐다. 바로 ‘고노 담화’의 주인공인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이다.

한국인들에게 일본 정치인은 대개 불편한 기억과 함께 떠오른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독도 문제, 역사 왜곡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정치사에는 적지 않은 수의 양심적 정치인들도 존재했다. 고노 요헤이는 그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고노 담화’가 따라붙는다.

1993년 8월 4일 당시 관방장관이던 고노 요헤이는 일본 정부가 실시한 장기간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는 위안소 설치와 운영,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일본군의 직·간접적 관여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밝히며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일본 보수층의 거센 반발이 예상됐고 정치적 부담도 컸다. 그럼에도 그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고노 담화가 나오기까지는 한국 사회의 끈질긴 문제 제기가 있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공개 증언에 나서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소송과 수요집회가 이어졌고 일본 내 양심적 학자와 언론인들도 자료 발굴에 나섰다. 특히 1992년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일본 방위청 도서관에서 일본군의 위안소 관여 문서를 발견한 것은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일본 정부는 더 이상 “관여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기 어려워졌다.

고노 담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위안부 문제는 유엔과 미국 의회 등 국제사회의 주요 의제가 됐다. 유엔 인권기구는 일본군 위안부를 전시 성폭력과 성노예 문제로 규정했고, 2007년 미국 하원은 일본 정부에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러나 역사는 직선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고노 담화가 발표된 직후부터 일본 우익세력은 조직적인 반격에 나섰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아베 신조였다.

아베는 1997년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을 결성해 고노 담화의 근거와 정당성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 우익 정치권은 위안부 문제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표현과 해석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의 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가 등장한다.

다카이치는 일본 보수 정치권에서도 가장 강경한 역사 수정주의 노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여러 차례 고노 담화의 수정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또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암시하는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을 공적 영역에서 사실상 퇴출시키는 데 앞장섰다. 현재 일본의 교과서와 공문서에서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이 거의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기간 진행된 정치적·이념적 투쟁의 결과다.

고노 요헤이와 다카이치 사나에는 단순히 다른 정치인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일본을 상징한다.

고노가 과거를 인정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가려 했던 일본이라면, 다카이치는 과거를 재해석하거나 축소함으로써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만들려는 일본이다. 고노는 일본의 명예가 진실을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고 믿었다. 반면 일본 우익은 국가의 명예가 과거의 잘못을 최소화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양자의 차이는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한일관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근본적 차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노의 집안 역시 전형적인 일본 보수 정치 명문가라는 사실이다. 부친 고노 이치로는 전후 일본 정계의 거물이었고, 아들 고노 다로 역시 일본 정치의 유력 인물이다. 그럼에도 고노 요헤이는 자신이 속한 정치 진영의 통념을 넘어 역사적 진실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의 존재는 더욱 의미가 있다.

오늘날 일본 정치에서 고노와 같은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끄는 일본은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개헌과 안보 강화, 국가주의적 역사관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어떤 노선을 선택할지는 일본 국민들의 몫이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의 선택이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화해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고노 요헤이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정치인이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사과가 아니다. 진실을 직시할 용기다. 부산 앞바다 건너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다. 그러나 양국의 거리는 바다가 아니라 역사 인식이 결정한다.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오늘의 일본이 그가 남긴 유산을 완전히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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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 김대중정치학교 대외협력본부장,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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