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로스로서 한없이 죄송할 뿐입니다”

며칠 전에 ‘잘못된 장유유서 문화가 세월호 참사 키웠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었다.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번 참사로 인해 뒤돌아 보게 되고 새로이 느껴지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동료나 부하선원, 승객들을 먼저 구하기 위해 구명보트를 양보하고 바다에 뼈를 묻는 것은 마도로스(바다사나이)들의 오랜 전통이자 명예였으며 낭만이었다‘는 것이다. 마도로스의 숭고한 전통을 욕보이며 한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킨 선장에게 도의적 책임까지 물어 무기징역 내지는 사형시켜야 한다는 얘기들이 온라인상에서 많이 들린다. 전직 항해사인 나로서는 선장의 사고 후 조처에 대해 어떠한 변명도 해줄 것이 없고 그가 마도로스의 한명이었음에 창피할 따름이다.

다만, 이 참사를 계기로 진정한 마도로스에게는 약자를 우선 배려하고 약자에게 양보한다는 전통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육지에서도 이를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의 침공을 대비하지도 못하고, 침공 후에는 시민들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하면서 몰래 먼저 탈출해 버리고, 뒤에 남은 시민들의 탈출구인 다리마저 끊어 버린 어느 어른을 세월호 선장과 비교하는 부끄러운 경우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겠다. 미래 어느 날 또 다시 적의 공격을 받을 때, 먼저 외국으로 탈출하는 어른들을 무기징역 내지는 사형시키는 법이라도 서둘러 제정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둘째는, 바다에서 조난을 당하게 되면 주위에 있는 선박들과 선원들은 무조건 달려가 구조해야 한다는 의무를 육지에서도 본받았으면 좋겠다. 세월호 침몰시 가장 먼저 현장에 집결했던 상선들과 어선들을 기억하자. 그들이 사고지역에 구경삼아 갔겠는가? 하루 비용 1천만원이 넘는 상선들과 며칠 생업을 포기하고 달려온 어선들은 ‘조난당한 선박의 인명을 구조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는 물론 법적으로도 선원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인명을 구조한 경우에 구조비용을 청구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자신들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즉시 집결한 것이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 이것이 또 하나의 마도로스 전통이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제때에 승객들의 탈출을 지시하고 안내했더라면, 그래서 승객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더라면 세월호 주위로 몰려온 상선과 어선의 선원들에게 구조되었을 것인데, 너무나도 안타깝고 애통하다.

육지에서 적용한다면,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근처에 있는 모든 차량들은 즉시 멈추고 인명을 구조하러 달려가야 한다. 화재가 났을 때 인근의 모든 사람들은 인명을 구출하기 위해 물을 나르고 사다리를 걸고 탈출하는 사람들을 위해 두꺼운 매트리스를 깔아주어야 한다. 누군가(약자) 조폭들(강자)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다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조폭들과 싸워야 한다. 물론 어떠한 구조비용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구급요원, 소방대원, 경찰이 구조해 주리라 믿고 그냥 지나치거나 구경만 하거나 방치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마도로스의 전통을 본받아 이러한 사회제도와 문화를 육지에서도 만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세째는, 언론에서 세월호의 선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사고원인의 하나라고 지목했다. 우리나라에 자본주의가 소개되기 훨씬 이전부터 대부분의 선주와 선원들은 단기계약제였다. 선원들은 몇 개월 간의 계약이 끝나면 육지에서 마도로스 특유의 낭만과 자유를 만끽한다. 또다시 바다로 나갈 것인지 육지에서 더 많은 낭만과 자유를 누릴 것인지, 다음에 어느 선주와 어느 선박과 계약할 것인지는 선원들이 선택한다. 굳이 요즘 용어로 표현하자면, 선원들은 예나 지금이나 비정규직이었으며 선원이라는 직업을 정규직으로 인식하거나 선주와 선박에 종속되고 예속되는 것을 싫어했다. (물론 이 부분에서 한때 선원이었던 나의 의견에 반대하는 선원들도 있으리라)

어느 유명한 산악인이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한다. 마도로스들은 다르다. 바다가 저기 있으니까 특별한 목적없이 그저 나간다? 아니다. 선원들은 예로부터 탐험과 교역을 위해서,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갔지 뱃놀이하러 간 것이 아니다. 취미로 요트를 타고 다니며 유람하는 사람을 마도로스라 칭하지 않는다. 호수같이 잔잔한 무풍지대의 바다에서 돌고래 헤엄치는 모습을 즐기는 시간들보다, 질풍노도와 같이 험악하게 뒤집어진 한겨울 삼각파도의 아찔함을 즐기는 시간보다는, 저 멀리 바다 너머 육지를 상상하며 즐기는 시간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다. 마도로스의 로망은 바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바다 저 넘어 육지에 있다. 항해하는 동안 마도로스의 머리 속에는 온통 육지에 두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순간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선주와의 계약을 존중하여 열심히 일하면서도 몇 개월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갈 때에는 족쇄를 풀어 던지는 기분을 만끽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기간이 길다보니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육지인들보다 더 인간적이고 순수하다.

그러나, 연안 선박들에서 일하는 선원들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입출항이 잦으며 많은 섬과 선박, 어장 사이를 항해해야 하는 특수성 등을 감안하여 이제부터라도 정규직화를 고려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특히 연안 여객선의 선원들은 현재 법에서 정하고 있는 자격요건을 한 단계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수백명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선장이 2급 항해사 자격증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잘못되었다. 사고 당시 당직사관이던 3항사의 1년 반 정도의 경력은, 대형 여객선의 안전운항이나 돌발상황에 대처하기에 부족하였다.

늦었지만 이제부터 시급히 관련 법을 개정하면 좋겠다. 선주들도 턱없이 낮은 급여로 저급한 선원들을 채용하려 하지 말고, 선박 및 승객들의 가치에 부합하는 수준 높은 선원들을 엄선하여 그들의 수준에 적절한 대우를 해야 한다. 정신병 치료를 받아야 할 만한 선원들을 채용하여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선주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법적 도덕적인 책임을 다하게 한 후 일정기간 반드시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다 위에서의 생활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도 배와 선주와 선장의 역할에 대해 곧잘 비유한다. 그래서 나도 ‘한국호’의 선장은 대통령, 선원은 공무원, 선주를 기득권층 국민, 승객을 비기득권층 국민이라고 비유해 보겠다.

선주는 자본과 언론을 동원하여 승객을 효과적으로 속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사기꾼을 선장으로 뽑아주면 그의 능력으로 다른 배들(미국호, 일본호, 중국호, 유럽호 등)을 사기치게 하여 따돌리고, ‘한국호’ 승객들만 보물섬으로 데려다 주겠다”는 거짓 약속으로 승객들을 속일 수 있다. 선주에게 사기당한 승객들은 선주의 대리인에게 선장(대통령)직을 허용한다. 선장은 ‘한국호’의 실제 주인이 승객이 아닌 선주인 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선장의 지시에 절대복종하는 선원들 역시 그러하다. 선주와 선장은 ‘한국호’가 병들어 있어서 수리해야 한다는 정보를 승객보다 많이 알고 있지만 당장의 돈벌이와 선주와 선장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호’를 수리하는 데 소극적이다. 그래서 선주와 선장은 사고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한국호’에는 이름만 올려놓았을 뿐이지 승객들 몰래 ‘미국호’나 ‘일본호’로 갈아 탈 지정석을 미리 사두었다.

그러다가 ‘한국호’에서 대형사고가 나고, 예상대로 수십년 전에 ‘한국호’ 진수 직후에 그랬듯이 선주와 선장이 제일 먼저 ‘한국호’를 탈출한다. 승객들만 희생되고 선주와 선장 및 일부 선원들은 변명과 사고위장에 총력을 기울인다. 사고 원인으로 선주의 비리행위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하지만 승객들이 합리적인 원인 규명을 하지 못하도록 약한 비난대상을 골라 언론에 제공하며 물타기를 시도한다. 사고의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거나, ’한국호에 결함이 있었다’는 등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승객들이 침몰하는 ‘한국호’를 구조하기 위해 안감힘을 쏟고 있을 때, 선주와 선장은 그들에게 안전하다고 믿어지는 ‘미국호’나 ‘일본호’로 탈출할 꿈을 꾸고 있다. 성난 승객들은 탈출하는 선주와 선장, 일부 선원들을 무기징역 내지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승객들은 목적지인 ‘선진복지국가’를 향하여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으려면 선주에게 속아서는 안된다는 것, 자질과 능력을 갖춘 선장과 선원들을 철저하게 검증하여 채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선주와 선장 및 선원들을 항상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한다.

위의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한국호’의 조화로운 성장을 저해해온 암세포 같은 병균들, 즉 잘못된 장유유서 문화, 인간보다 자본이 우선시 되는 문화, 국민보다 정권이 우선시 되는 문화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과감하게 제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일, 이번에도 지난 십수년처럼 안타깝고 억울한 감정만 표출하고 만다면, 눈물과 한숨만 내쉬고 만다면, 촛불만 들고 만다면, 노란 리본으로 체면치레만 하고 만다면, 그래서 암세포 도려낼 칼을 쳐들지 못하고 슬그머니 잊혀지고 만다면, 머지않아 대한민국은 필리핀과 한 치도 다름없는 후진국이 되고 말 것이다.

거듭, 전혀 마도로스답지 않은 선장과 선원들 때문에 너무나도 큰 희생을 당한 분들의 넋을 빈다. 유가족들에게도 전직 선원의 한 사람으로 대신 용서를 빈다. 세월호 선원들의 크나큰 잘못 때문에 마도로스로서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고 그들을 대신하여 자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리며 비통해하고 있을 수많은 선원들의 안전운항을 기원한다. 다시는 이러한 잘못이 재발하지 않도록 선원 모두 스스로 훈련하고 자질을 함양시켜 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월호의 인명구조를 위해 만사를 제켜두고 내달려온 상선들과 어선들의 선원분들, 어느 누구에게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마도로스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수행해주신, 성함이 알려지지 않은 그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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