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관광으로 확산된 ‘한류의 힘’


싱가포르, 최적의 한류 소비시장… 한식당만 200여 곳

동남아의 허브 싱가포르에 한류 열기가 뜨겁다. 싱가포르 최대 일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 연예인 소식을 전한다. 거의 매주 K팝 스타들의 공연 소식을 접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들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싱가포르인들이 값비싼 입장료를 내고 공연장을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지드래곤 공연의 경우 특별석이 1000달러(약 85만 원)의 고가였음에도 판매 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진됐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여전히 싱가포르인의 애호곡이다. 춘절을 앞두고 지난 1월11일 토니 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차이나타운 점등식 행사장에선 ‘강남스타일’이 사자춤 공연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한류 열풍의 주역은 K팝 노래와 가수들이지만, TV 드라마 또한 오랫동안 큰 역할을 해왔다. 한류 드라마는 중년층, 특히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나라의 많은 중년 여성들이 한류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라고 고백하면서 즐겨 시청하는 드라마를 늘어놓곤 한다. 싱가포르 외교부의 한 고위간부는 자신의 가족들이 한국 드라마에 얼마나 푹 빠져 있는지 보여주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저녁 서재에 앉아 있는데 거실에서 가족들이 서글피 우는 소리가 들려 놀란 나머지 달려가 봤더니 한국 드라마의 슬픈 장면을 보면서 모두 울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싱가포르 한류 열기는 K팝과 드라마를 넘어 다양한 문화장르로 확산되고 있다. 그 한 예가 한국 음식이다. 국토 면적이 서울시 정도인 싱가포르 전역에 한국식당이 200개 정도나 되니 놀랍지 않은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몇 개뿐이던 한식당이 이처럼 급증한 배경에는 한류문화가 있다. 한식이 건강에 좋고 음식 맛이 미각을 만족시켜서이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의 경우 드라마에서 본 한국식당 분위기를 체험해 보고 싶은 욕구가 높다는 것이 본인들의 설명이다.


춘절 사자춤 음악도 ‘강남스타일’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싱가포르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중요한 동기가 또한 드라마다. 한국어를 익혀서 드라마 속 대사를 원어로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현재 싱가포르 전역의 한국어 교습소에 수강생이 연간 5000명에 이른다. 한국국제학교도 싱가포르 성인들을 위한 한국어 강좌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한류는 관광과 인적 교류 확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싱가포르 사람은 점점 늘어나 지난해 17만 명을 넘어섰다. 연말 휴가를 한국의 스키장에서 보내고 왔다는 국회의원들과 휴가기간 중 가족과 함께 한국에 다녀왔다는 장관들을 여럿 보았다. 한류의 본고장인 한국을 알기 위해 한국 대학으로 유학 가는 이 나라 대학생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몇 년 전부터 한국대사관이 연례적으로 개최해 온 ‘코리아 페스티벌’ 행사를 지난해에는 싱가포르의 유일한 지상파 방송사인 미디어콥(MediaCorp)과 공동 주최했다. 이곳에서 한류가 다양한 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코리아 페스티벌 2013’은 인기 걸그룹 에이핑크 공연과 한국영화제, 전통예술단 공연, 한국어 말하기대회, 한국요리 시연, 한국상품 전시, 태권도 시범, 스키장 홍보 등 다채로운 행사로 구성됐다. 행사기간이 3일이었음에도 8500여 명이 참관했고, 관객 대부분이 유료 입장권을 구입한 현지인인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아시아 문화권으로 정치적 장애요인이 없고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달러가 넘는 부자나라 싱가포르는 사실 최적의 한류 소비시장이라 할 수 있다. 비즈니스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동남아 지역 허브로 자리잡고 있어 인근 국가로 한류를 확산시키고 한류의 서구 진출을 위한 가교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만큼 싱가포르에서 한류 열기를 지속시켜 나가는 일은 한류의 세계화를 위해 긴요하다. 그러려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한류 구심점 될 문화원 설립 시급

우선 한류문화와 산업에 대한 장기 전략을 갖고 기획사와 기업들의 협력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K팝 스타 방문공연 대부분이 상업적으로 현지 이벤트회사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데, 간혹 이들 회사 간 과당경쟁이 벌어진다. 부적합한 이벤트회사 선정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현지 언론에 보도되는 일들도 있었다. 단기적 이윤 추구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미지 관리에 신경 써 한류 열기가 식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유불급(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이란 말이 적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한류문화 콘텐츠를 다변화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K팝과 TV 드라마에만 계속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분야로 저변을 넓혀나갈 필요가 있다. 한류문화를 만들어낸 우리 문화예술인들의 창의적 재능은 다른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발견된다. 예컨대 지난 1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적 아트페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에서 현대, 가나, 국제, 아라리오를 비롯한 10여 개의 갤러리와 중견·신예 작가들이 대거 참여해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적 경쟁력을 충분히 입증하였다.

한류문화 재도약을 위해 그동안 지연돼온 싱가포르 한국문화원 설립이 하루 빨리 이뤄졌으면 한다. 문화예술은 창조경제의 한 축을 담당할 신성장동력이다. 싱가포르의 한류 열기는 한국의 브랜드가치는 물론 국가경제 관점에서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류 스타들의 공연과 콘텐츠 수출로 생기는 직접적 경제이익은 말할 것도 없고, 식당, 식품제조업체, 항공사, 관광회사 등 유관업계에 안겨주는 경제적 파급효과 또한 적지 않다. 한류 장기화·세계화를 위해 각 분야에서 머리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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