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싸비아’가 북한 ‘아싸비아’ 압도할 수 있나
[서평] 무깟미다, ‘이분 칼둔의 고백’
“도시문명의 거주자 가운데 각 계층은 자기보다 낮은 계층을 다스린다. 어떤 사람의 지위와 신분에 따라 그 영향력이 커지거나 혹은 작아진다. 따라서 지위가 영향력을 넓게 미친다면 거기서 비롯되는 이윤도 커지고 만약 지위의 영향력이 작다면 이윤도 작아진다. 그러므로 지위를 허용해주는 이는 가장 큰 축복을 베푸는 자다. 지위를 자신의 수하에 있는 사람에게 부여한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임을 말한다.
지위를 얻고자 하는 이는 복종과 아부를 할 수밖에 없다. 지위를 허락할 권한을 쥔 자들이 그것을 원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종과 아부는 행복과 이윤을 목적으로, 이런 지위를 얻기 위한 수단이다. 부와 행복을 누리는 사람 다수는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잘난 척하고 거드름을 피우는 천성의 소유자는 이런 지위를 얻지 못한다. 그런 이들은 노동의 이윤도 줄어들고 결과적으로는 가난하게 된다. 그런 성격은 자신이 완벽하다는 망상에서 비롯된다. 박학다식한 학자, 뛰어난 작가와 시인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주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타인에게 잘난 척하기 마련이다. 왕가의 후손이나 탁월한 인물의 후예인 명문가의 사람도 흔히 이런 망상을 한다. 사실 그들은 이미 사라진 것을 부여잡고 있다. 탁월함은 유산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숙련된 기술과 경험이 많은 사람들 일부도 그런 망상에 빠진다. 그들은 매우 콧대가 높다. 또 지위가 높은 자에게도 절대 복종하거나 아부하지 않는다.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다른 이를 얕잡아 본다. 설사 군주라 해도 복종을 거절하기도 하는데, 복종이 수치이자 굴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자신을 대우해 주었으면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못 미치는 대우를 하는 자들을 매우 증오한다. 또 사람들로부터 합당한 대우를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불쾌하게 여긴다.
결국 그는 인간의 속성에 따라 사람들의 미움을 산다. 이런 자들 가운데 드물게는 자신보다 완벽하고 우월한 누군가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하는데 이는 강압적이고 압도적인 힘에 의한 경우다. 이처럼 건방지고 만만치 않은 자가 지위를 잃으면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의 오만을 증오하고 약간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타인들의 원성으로 사람들과의 교류나 모임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피폐되고 가난하거나 근근이 이어가는 형편으로 살아가게 된다. 부는 아예 얻지 못한다.
완벽한 지식인은 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미 지식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되었으므로 운까지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은 14세기 이슬람세계의 최고 사상가로 일컬어지는 이븐 칼둔(Ibn Khaldun 1332-1406)의 명저 ‘무깟디마(The Muqaddimah 역사서설, 김정아 번역, 소명출판)’에서 나오는 한 단락이다. 이븐 칼둔은 우리나라에서 ‘이븐 할둔’이라 소개된 바 있는데 아랍어 전문 번역가의 의견에 따라 원음에 가까운 ‘칼둔’이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븐(ibn)’이라는 말은 ‘오사마 빈 라덴’의 ‘빈(bin)’과 마찬가지로 ‘누구의 아들’이란 뜻이기에 ‘칼둔의 아들’이란 말이 되지만 이 경우에 칼둔은 먼 선조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븐 칼둔은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세거하다 기독교도의 스페인 재정복에 따라 튀니지로 옮겨온 아랍인 가문의 일원으로 튀니스에서 태어났다. 당시로선 최고의 교육을 받은 이븐 칼둔은 약관 20세에 튀니스를 지배하던 술탄의 승상부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모로코 페즈, 알제리아 틀렘센, 스페인 그라나다 등지의 이슬람 소왕국들을 전전하면서 관직생활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반역과 궁정투쟁, 배신과 투항, 투옥과 석방, 추방과 복귀, 추락과 영달을 거듭했다. ‘개혁군주를 만들어내려는 변혁가’로부터 ‘정변을 획책하는 음모가’에 이르기까지 이븐 칼둔의 생애 전반은 요샛말로 치면 끝없이 ‘대선캠프’에 끼어든 격이었다.
따라서 위에서 인용한 무깟디마의 구절은 그의 쓰라린 체험에서 우러난 뼈아픈 고백이자 씁쓸한 술회라고 할 수 있다. ‘완벽한 지식인’은 그 누구보다도 이븐 칼둔 자신을 이르는 말이었고,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제외되고 가난한 삶을 이어가는 것’이 그가 무깟디마를 저술하던 45세 무렵의 상황이었다. 50대에 들어 그는 이집트로 가서 죽을 때까지 이슬람신학교 교수와 대판관 등 현직(顯職)을 역임했다. 그러나 처자식을 실은 배가 풍랑에 난파하는 바람에 온 가족을 잃는 불행을 겪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는 권력의 풍향에 따라 주군을 바꾸는 습성을 버리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븐 칼둔의 무깟디마에서 우리가 알아둘 만한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왕조의 흥망을 논하면서 지배세력의 ‘연대의식(Asabiyyah 아싸비야)’이야말로 권력을 획득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열쇠라고 지적했다. 이 이론에 따른다면 북한의 김씨 왕조가 3대에 이르도록 무너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일제 치하 빨치산 혁명세력의 후예그룹이 흩어지지 않고 내부 결속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1990년대 북한이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특권층 가운데 이탈자는 황장엽, 고영환, 조명철, 강명도, 이한영 등 비교적 소수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일리가 있는 듯하다. 결국 대한민국의 아싸비아가 북한의 아싸비아를 압도하고 포괄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