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자산업이 발달한 이유
필자는 출근 시에 마을버스를 가끔 탄다. 그때마다 정말 짜증나는 것이 있다. 버스기사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나는 끼~익하는 소리다. 이 소리는 벌써 10년도 넘게 들린다. 왜 그럴까? 그 소리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까? 충분히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하지 않을 뿐이다. 왜 그런가? 그런 기술을 개발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객이야 불편하든 말든 2개의 버스 제조업체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니 기술혁신에 신경 쓸 이유가 없어진다.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두 개의 제조업체는 매년 교체되는 버스만 생산해서 팔면 그만이다. 버스 운송업체, 관광버스 등의 수요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살 수밖에 없다. 이 시장은 과다한 초기투자 비용 등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경쟁업체가? 나오기도 어렵다. 한마디로 경쟁이 없다. 이런 곳에는 발전이 없다.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제조된 버스가 수입되어 경쟁시장이 도입되어야 해소될 모양이다.
반대로 TV, 세탁기, 냉장고 등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을 보자. 삼성과 LG가 치열한 싸움을 한다. 두 업체는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에서 판매하는 물량이 90%가 넘고, 해외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 결과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인다. 소비자 불만을 제로로 만든다. 소비자 후생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경쟁 있는 곳에 발전 있다.
이처럼 한 국가의 경제발전, 기업의 성장은 경쟁체제의 도입 여부에 따라서 달라진다. 만약 국내시장에 독점이 형성되고, 독점사업자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과 유착하여 새로운 경쟁자가 나오는 것을 제거해 버린다면 경제발전의 유인이 없어진다. 기업가 정신은 소멸되고 국내시장에 안주하게 된다. 글로벌 경쟁력은 없어진다.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한다. 글로벌 기업이 나오지 않는 국가는 글로벌 경제에서 경제성장이 매우 어렵다. 국내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은 편하게 사업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독이 될 수 있다. 독점이 있는 곳에는 혁신과 기술개발이 없다.
최근 남미의 한 국가는 그간 국영기업이 독점했던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산업을 민영화하여 경쟁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나라의 한 국영기업은 석유와 가스의 생산, 정유, 유통 등 모든 면에서 독점하였고, 부패가 고착화되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상태였다. 혁신과 기술개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런 기업은 국가의 큰 부담이다. 오히려 다른 경제부분에 악영향을 끼친다.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생산한 제품을 국민들에게는 비싸게 팔아 독점적 이윤을 계속 챙기고, 이를 권력자에게 상납하는 부패와 독점의 사슬이 형성된다. 빈부격차는 더 악화된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객관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어도 경쟁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나라는 몇 십년이 흘러도 발전이 없다.
국가가 역동적으로 발전하려면 국가시스템을 경쟁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경쟁이 힘들고 버겁더라도 도입해야 한다. 한국의 전자, 조선, 건설 산업이 발달한 이유도 치열한 경쟁체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OECD 대한민국 정책센터 경쟁정책본부는 아시아 태평양권 국가들의 경쟁법 도입을 위해 지난 10년간 노력해 왔다. 21개 아시아 국가의 공정거래관련 공무원들을 모아서 매년 6차례 국제워크숍을 해왔다. 태국, 몽골과 인도네시아 등에는 전문가를 보내서 수 주간 공정거래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그나마 2007년에 ASEAN 10개국 정상들이 2015년까지 경쟁법을 도입하기로 결의한 것은 이런 점에서 퍽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