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쟁 연주가 팽려영, “예술과 사랑 따라 한국 왔어요”

<사진=한중예술협회>

단절된 중국 전통음악,?한국서 찾아

중국전통악기 고쟁 연주가 팽려영(彭麗穎·27)씨. 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중국어 발음으로는 ‘펑리잉’이지만 ‘팽려영’이란 한국식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대로 쓴다.

그는 한중예술협회를 만들어 한국-중국 간 전통음악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20대 외국계 여성이 사단법인을 설립해 이사장이 됐으니 그 열정과 추진력을 짐작할 만하다. 팽려영씨는 한국에 진출한 첫 중국 전통음악인이다. 중앙대 음대 강사이자 연주인, 방송인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8월28일 창덕궁 인근 한중예술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4살 때부터 고쟁을 연주했다던데.
“부모님이 모두 전통음악을 전공했다. 문화혁명 이후 다른 길을 걷고 계시지만. 아버지는 얼후(중국 해금), 어머니는 양금 연주자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다 보니 이른 나이에 악기를 다룰 수 있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빠른 16살 때 고등과정을 마치고 특기자로 톈진음악대학에 입학했다. 중국 최초 음악대학이다. 19살에 대학과정을 마쳤다.”

-음악신동이다.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학교 졸업 후 강사임명을 받았지만 교수가 되려면 3년 안에 석사학위를 받아야 했다. 나이도 젊고 배우고 싶은 게 많았다. 고쟁을 한 것도 관현악기에 관심이 많아서였다. 찾아보니 이런 악기는 중국 한국 일본 몽골 등 동아시아에만 있더라. 일본으로 갈까, 한국으로 갈까 고민했는데, 고쟁과 비슷한 가야금을 배우기로 마음 먹고 가깝고 친근한 한국을 선택했다. 그때가 2006년이다. 1년간 경기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이듬해 서울대 국악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중국전통음악을 전공한 유학생은 지금까지도 나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

-탤런트 이하늬 씨도 그 무렵 가야금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아는데.
“졸업을 함께 했다. 졸업식날 이하늬씨와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너무 인기가 많아서 그녀의 어머니인 문재숙 이화여대 교수와 사진을 찍었다(웃음).”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媛) 여사와 이름이 비슷하다. 펑 여사도 예술인 출신인데.
“평 여사와 같은 고향 출신이다. 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사실은 내 이름도 펑리위안(彭媛, 팽려원)이었다. 동명이인이었다. 그런데 그 분 때문에 개명하기 힘든 중국에서 팽려영으로 이름을 바꿨다.”

-어떻게 개명했나.
“나이 차이는 많지만 펑 여사가 산둥성예술학교 선배이시다. 교장선생님이 이름이 똑같아 혼선이 생기니 바꾸라고 하셨다. 학교 공연 때 내가 연주하는데 그 분이 출연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님도 동의하셔서 바꿨다. 고향 친구들은 여전히 펑리위안으로 부른다.”

맨손으로 연주하는 한국 가야금과 달리 고쟁은 피크로 뜯어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팽려영씨가 고쟁 연주시범을 보였다. <사진=김남주>

시진핑 부인과 동향, 이름까지 같아

-고쟁과 가야금의 차이는.
“고쟁은 21현이고 쇠줄이다. 소리도 그만큼 높고 공명이 크다. 가야금은 전통(12현), 산조(12현), 현대(25현) 등 세 종류로 다양하다. 고쟁처럼 피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뜯는다. 우아하고 깊은 맛이 있다. 고쟁의 높고 날카로운 소리만 듣다 가야금을 연주하니 그윽한 맛이 있어 좋다. 재미있는 사실은 문화혁명으로 단절된 중국전통음악을 한국에서 발견한다는 것이다.”

-중국전통을 한국에서 찾다니.
“한국은 궁중음악의 전통이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고쟁도 개량한 악기다. 중국에서 공자 제사 때 드리는 음악을 한국 국악대학에서 연주한 적이 있을 정도다. 서울대 규장각에서 궁중음악과 관련한 많은 자료를 발견했다. 중국의 전통음악을 한국에서 배워야 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됐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한다.”

-한중예술협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
“한국의 전통음악을 중국에 알리고 중국의 문화예술을 한국에 알리는 일을 한다. 2010년 2월 한중전통예술협회를 설립한 뒤 이름을 바꿔 올해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중국음악으로 배우는 중국어 교실을 열고 있다. 유치원·초등학교에 찾아가는 중국음악 체험활동도 한다. 요즘엔 중국악기동호회 회원 40명과 함께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7시 정기음악회를 열고 있다. 이 공간이 좁을 정도로 관객들이 많이 온다.

한국 중국 몽골 베트남 전통음악인들과 아시아 뮤직 앙상블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아직 중국에 한국전통음악을 알리는 일은 본격적으로 하지 못했다. K-POP 등 한류가 바탕이 돼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 본다. 사무실을 연 지도 얼마 안 됐고 아직은 시작단계다.”

한중예술협회는 올 들어 '찾아가는 중국음악체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성북구의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모습<사진=한중예술협회>

-한국생활은 어떤가.
“대학원 선배 결혼식에서 지금 남편을 만났다. 당시 육군 장교였는데 신랑측 군 예도의식에 참여했고 나는 축하연주를 하러 갔다가 마음이 통해 결혼에 골인했다. 연천 포병부대의 대위로 있어서 위문공연 엄청 많이 갔다. 연주비는 안 주고 부대 감사패만 주더라(웃음).”

-앞으로 계획은.
“나는 욕심이 많다. 하루에 5개 일을 한 적도 있다. 중국어 강사, 방송국 DJ, 공연 등 다 잘 하고 싶다. 단기 목표는 한국에서 교수가 되는 것이다. 올해 중앙대에서 한국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협회도 사단법인화됐으니 본격적으로 일을 해나갈 생각이다. 두 나라를 오가며 좀더 정확하게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죽기 전에 역사에 이름을 남겨야 하지 않겠냐고.”

중국 산둥성 한족 출신인 팽려영씨는 BBB코리아 홍보대사, KBS 국제방송 중국어팀 아나운서, 웅진 다문화방송 DJ, 중앙일보 중국인여행통신원, 주한중국문화 강사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2010년 결혼해 한 살짜리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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