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경찰, 시위대 강제 해산…광장 접수

시위대 “전쟁처럼 진압…인권침해 범죄” 맹비난

집권당 대규모 집회…반정부-친정부 충돌 우려

터키 경찰이 반정부 시위의 중심인 이스탄불 게지공원을 점령한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킨 것을 계기로 발발 17일 만에 중대 고비를 맞았다.

시위대와 야당은 “전쟁 같은 진압”이라며 정부를 맹비난했고 정부는 게지공원이 있는 탁심광장의 진입을 원천 봉쇄해 도심 곳곳에서 시위대와 격렬한 충돌을 빚었다.

정부는 탁심광장에 진입을 시도하면 “테러 집단으로 간주하겠다”며 초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은 16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외곽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친정부 성향의 일부 단체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놔 두 세력의 충돌도 우려된다.

◇’텅 빈 탁심광장’…도심 곳곳에서 충돌

에르도안 총리가 15일 게지공원을 비우는데 하루 말미를 주겠다는 최후통첩을 한 지 1시간여 만에 경찰이 고무총탄과 최루탄, 물대포 등을 쏘면서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경찰이 주말을 맞아 시위대 규모가 더 커지기 전에 속전속결로 공원 점령에 나서 부상자가 속출했으며 시민의 거센 분노를 샀다.

시위의 상징적 장소인 탁심광장은 경찰이 지난 11일 이미 장악했고 시위대 수천명이 텐트 수백개를 치고 점령 시위를 이어가던 광장 뒤편의 공원까지 접수해 시위대는 16일 만에 최대 집결지를 빼앗겼다.

경찰은 광장으로 진입하는 주요 도로를 원천 봉쇄해 시위대의 주축인 탁심연대가 이날 오후 4시로 예고한 대규모 집회는 무산됐다.

그러나 광장 인근 주요 도로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온종일 격렬한 충돌을 빚어 반정부 시위는 17일째 이어졌다.

수도 앙카라에서도 도심 크즐라이광장에서 시위 기간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예정됐으나 경찰이 장의차량의 광장 진압을 막아서고 광장의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켜 여러 곳에서 충돌했다.

경찰의 게지공원 강제해산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이날 새벽까지 이스탄불과 앙카라 도심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이스탄불의 유럽 쪽에 있는 탁심광장으로 진출하려고 아시아 쪽에서 보스포러스 대교를 건너려던 시위대는 최루탄과 물대포로 진압한 경찰에 의해 저지됐고 교통이 마비돼 운전자들이 최루가스를 마시는 피해를 봤다.

탁심연대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경찰이 게지공원과 이스탄불, 우리 조국을 전쟁터로 만들었다”며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이 있던 공원에 고무총탄과 최루탄 등으로 진압에 나섰다”고 맹비난했다.

이들은 이번 진압으로 수백명이 고무총탄에 부상했고 상당수가 연행됐으며 많은 사람이 병원으로 갈 수 없는 처지라며 “이는 인권을 침해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정부 “시위 참여자, 테러리스트로 간주”…집회 원천봉쇄

탁심광장 전역을 장악한 정부는 추가 시위 발생을 전면 차단하고자 초강경 태도를 보였다.

에게멘 바이시 유럽연합(EU) 담당 장관은 전날 터키 방송국 에이하베르와 인터뷰에서 경찰이 진입을 차단한 탁심광장에 시위대를 지지하러 간다면 테러 집단을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시 장관은 “시위대를 지지하러 탁심광장에 가려는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길 요청한다”며 “지금부터 국가는 시위대를 지지하면 테러 집단 소속으로 간주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CNN과 영국 BBC 등 서방 언론에 대한 정부의 불만을 재차 강조하고 “광고도 중단하고 여러 시간 방송해 터키의 이미지를 손상시켰다”고 주장했다.

휴세인 무틀루 이스탄불 주지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재 상황에서 탁심광장 집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며 “상황이 안정된 이후 그들(시위대)은 민주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틀루 주지사는 전날 공원 진압이 끝난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단시간에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진압에 성공한 것에 만족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는 진압이 아니라 대피시킨 것”이라며 급진적 좌파 단체 등 일부 ‘마지널 그룹'(marginal group)이 선의의 시위 참여자들을 불법 행동을 하도록 선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부상자는 29명이며 이 가운데 중상자는 없다고 발표했으나 광장 인근 호텔 등지로 피신한 시위대는 수백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무틀루 주지사는 “경찰이 45분 동안 경고방송을 한 이후 많은 사람이 이 요구에 응했으며 단지 소수 마지널 그룹만 공원에 남았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이날 새벽 트위터에 일부 선동가들이 총기를 사용해 경찰 2명이 다쳤다며 “이것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정보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부 단체의 불법성을 부각시켰다.

경찰은 공원 인근 호텔에서 자원봉사에 나서 부상자를 치료하던 의사들을 체포했으며 시위대의 강성 세력의 하나인 이스탄불 프로축구팀 베식타시 응원단을 조직한 젬 야크시칸을 자택에서 연행했다.

◇집권당, 주말 양대 도시서 대규모 집회

정의개발당은 전날 앙카라 교외 신잔에서 집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날도 이스탄불 공항 근처의 카즐르체시메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에르도안 총리는 전날 앙카라 집회에서도 시위대의 마지널 그룹이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지지자들에게 민주주의의 수단인 투표함을 통해 저항하라고 독려했다.

에르도안 총리의 지지자들이 모인 이번 집회는 양대 도시의 외곽에서 열려 도심 시위대와 10㎞ 이상 떨어졌으나 수만명이 동원됨에 따라 반정부와 친정부 세력 간의 충돌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미 총리의 고향인 리제에서는 지난 5일 반정부 시위대가 주민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사례가 있다. 또 총리 지지자들은 지난주 총리가 방문하는 도시마다 공항에 수만명이 몰려 대내외에 세를 과시한 바 있다.

일부 현지 언론은 정의개발당 청년당원들이 경찰의 비호 아래 시위대를 공격했다는 시위대의 주장을 보도하기도 했다.

아나돌루 통신은 일부 시민단체가 터키 정부를 지지하는 선언을 내놨다고 이날 보도했다.

유럽터키민주주의자연합의 네덜란드지부는 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서에서 서방 미디어의 이번 시위사태 보도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이 단체의 프랑스지부도 터키의 안정을 지키고 강력한 민주주의를 지속해야 한다며 정부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터키헝가리기업인협회는 터키의 경제성장을 방해하려는 외부 이익집단이 있다는 에르도안 총리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미국 CNN 뉴욕지사 앞에서는 재미 터키인들이 CNN의 보도에 항의하는 집회와 지지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성명을 내고 “에르도안 총리가 독재자적 마인드와 개인적 야망 때문에 터키를 죽이려 한다”고 비난했으며 터키 노동조합연대는 17일 총파업을 예고해 반정부와 친정부 세력 간 갈등이 더욱 커졌다. <연합뉴스/김준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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