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5일] 천재 영화인 찰리채플린 영면
1995년 한국의 슈바이처 잠들다
말년에 뇌졸중과 당뇨병에 시달리던 장기려 박사는 1995년 12월 25일 서울 백병원 중환자 실에서 사망했다. 향년 84세. ‘가난하고 헐벗은 불쌍한 환자들의 의사가 되겠다’고 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평생 지키려고 노력한 진실한 크리스천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에 그렇게 돌아갔다.
경성의학 전문학교에 입학, 1932년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경성의전 입학 당시 돈이 없어서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던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1940년 기독교 계열의 평양 기휼병원 외과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해 9월 <충수염 및 충수복막염의 세균학적연구>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3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1956년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겸 학장, 1965년 서울 카톨릭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등으로 재직했다.
1950년 6·25전쟁으로 남하한 후 1951년 경남구제위원회의 전영창과 한상동 목사의 요청으로 부산 영도구 남항동에 위치한 제3교회에서 무료진료기관인 복음병원을 설립했다. 1976년까지 25년간을 복음병원 원장으로 봉직하면서 1968년에는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발족시키고 영세민들에게 의료복지 혜택을 주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1975년에는 의료보험조합 직영의 청십자병원을 개설했다. 1979년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27세 때 척추결핵으로 입원했던 춘원 이광수(李光洙)의 주치의를 맡았는데, 춘원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인 의사 안빈의 실존모델이라고도 한다.
1994년 인도 전 대통령 자일 싱 사망
1982∼1987년 인도 대통령을 역임한 자일싱(Giani Zail Singh)은 1994년 12월25일 사망했다. 얼마전 트럭에 치인 교통사고를 당했고 고통 받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펀자브주(州) 파리드코트 지방에서 출생, 1934년 시크당에 입당, 인도 독립운동에 가담해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1948년 인도 독립과 함께 펀자브주 경제장관, 1956년 상원의원이 됐다. 그 후 여러 요직을 거쳐 1980년 간디내각에서 내무장관이 됐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대통령 자리가 없어지다
“나는 이제 우려뿐만 아니라 인민 여러분의 지혜와 의지에 대한 희망을 함께 지닌 채 대통령직에서 물러납니다. 나는 알마아타 합의가 진정한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고 개혁과정을 용이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나의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구 소련의 8번째 지도자미하일 고르바초프 연방대통령은 1991년 12월25일 소련(USSR)연방 대통령 활동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연방대통령직을 공식 사임한 것이다.
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연방(USSR)이 해체되고 11개 공화국의 독립국공동체(CIS)가 탄생, 소련 최고지도자인 연방대통령직 자체가 소멸되는 순간이었다.
1922년 스탈린이 강제 구성해 69년 동안 지속돼왔던 왔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소비에트 연방 해체만은 막아 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막을 수는 없었다.
고르바초프는 1년 전인 199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77년 찰리채플린 사망
1977년 12월25일 영화천재 찰리채플린이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으로 영국은 지구촌 최고의 부자 나라였다. 그런데 빈부격차는 오히려 갈수록 심했다. 영화 <모던 타임즈>가 묘사하는 것처럼, 공장의 노동 강도는 끔찍했고 그 나마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에게나 그런 끔찍한 노동을 통해 가족을 부양할 기회가 주어지는 시기였다. 가난한 사람은 비참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찰리 채플린도 그런 빈민에 속했다. 배우였던 어머니가 목소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병까지 걸렸으니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채플린이 선택한 것은 희극배우였다. 8세 때부터 시작된 희극배우의 길은 육체와 정신의 가난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듯싶다. 그것이 애수 어린 코믹 연기를 하는 배우로 평생을 살게 한 힘이었다.
영국의 희극배우·영화감독·제작자. 1914년 첫 영화를 발표한 이래 《황금광 시대》,《모던 타임스》, 《위대한 독재자》등 무성영화와 유성영화를 넘나들며 위대한 대작을 만들어냈다. 콧수염과 모닝코트 등의 이미지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1975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작위를 받았다.
채플린은 75세에서 펴낸 자서전에서 ““세상은 내게 최상의 것과 최악의 것을 동시에 선사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지 않은 일을 많이 겪었지만 나는 행운과 불운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런 믿음 때문에 나는 아무리 나쁜 일이 일어나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일이 일어나면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기뻐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