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 ‘미스터 밴’ 아닌 ‘미스터 반’
[이주의 키워드] ban
국제 뉴스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쓰이는 빈출어 중 하나가 ‘ban’ 이다. ‘금지하다’는 뜻이다. 가로막거나 금지하거나 불허하거나 방해한다는 뜻의 어휘가 숱하게 많지만, ‘ban’ 만큼 널리 애용되는 말은 없다. 단음절어로 ‘간단명료’를 추구하는 뉴스 언어에 적합하고 어감이 강렬한 때문인 듯 하다.
‘금지’란 의미의 명사로도 사용된다. 금지할 때는 ‘put/ order/ place/ impose a ban on ~’ 금지를 풀 때는 ‘lift/ remove the ban on ~’이라 한다. 막대기라는 뜻에서 나온 ‘bar’는 보통 ‘금지한다’는 동사로만 쓰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국이 낳은 국제사회 지도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문 성이 ‘Ban’이다 (UN Secretary-General Ban Ki-moon). 금지한다는 ‘ban’은 ‘밴’으로 발음된다. 그래서 반 총장은 취임 초기 기자회견 때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 이름은 ‘미스터 밴’이 아니라 ‘미스터 반’”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ban’이 핵심어가 된 이 주일의 뉴스 2가지만 살펴보자. 인도네시아는 열대우림과 이탄(泥炭)지 개간을 금지하는 ‘기념비적 금지령(landmark ban)’을 2년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벌채와 경작지 조성을 2015년까지 금지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이로써 6400만 헥타르(64㎢)의 산림이 보호대상이 됐다고 인도네시아 환경당국은 밝혔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그동안에도 개발금지 법은 있었지만 환경훼손이 심화돼왔다고 지적했다.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다 처벌규정이 미약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은 산림개발금지법을 시한이 없는 항구적 법으로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밀림의 왕국’ 인도네시아는 의외로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지목돼왔다. 보르네오섬과 수마트라섬의 대규모 야자수 농장이 그 주범이다. 경작지를 개간하려면 탄소가 풍부한 이탄(泥炭)지대를 배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렇게 생산된 야자수유와 펄프, 종이, 고무 등을 수입하는 세계 각국도 인도네시아의 산림훼손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겠다. 열대우림이 파괴되면서 오랑우탄과 호랑이, 코끼리, 코뿔소 같은 동물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또 하나의 ‘금지’ 뉴스는 방글라데시에서 나왔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앞으로 1달간 모든 정치 집회와 회의를 금지한다(“ban all political rallies and meetings”)고 발표했다. MK 알람기르 내무장관은 최근 몇 달 동안 발생한 폭력사태를 열거한 뒤 “일부 세력이 정치집회라는 구실로 방글라데시를 무정부상태로 이끌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전국적인 정치집회 금지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정부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강압조처라며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전 총리인 칼레다 지아가 이끄는 제1야당 방글라데시국민당(BNP)은 초당적 과도정부(non-party caretaker government)를 구성해 2014년 초로 예정된 총선을 감독하자고 제안했다.
야당은 이런 구상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대대적인 정치집회를 계획해왔다. BNP는 이미 정치집회가 금지될 경우 극단적인 행동을 불사하겠다고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 아와미연맹(AL)에 경고했다.
과거 부정·폭력 선거로 얼룩졌던 방글라데시는 1996년, 2001년, 2008년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과도정부가 선거를 관리한 바 있다. 이들 세 선거는 국내외 참관인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