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칼럼] 무기중개 고문료와 박근혜 맹장수술

올해 69기 졸업생을 배출하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육사) 교훈은 지인용(智仁勇)이다. 육사 출신들은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을 통해 명예·신의·정의의 ‘육사혼’을 계승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무한히 봉사할 것을 다짐하며 이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졸업생들로 구성된 육사총동창회 웹사이트엔 “(육사 출신들은)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고 국가 발전의 구심체로 재도약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안보 축을 맡게 될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 그리고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를 보면서 이들이 육사 출신으로서 적절한 행동과 처신을 해왔는지,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과 미래 비전을 갖고 급변하는 안보환경에 적절히 대처해 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우선 김 실장을 보자. 그는 2007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하여 ‘꼿꼿장수’로 통한다. 그는 이 일로 인해 보수 쪽으로부터 극진한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그의 ‘꼿꼿한’ 자세가 과연 찬사를 받을 만한 일일까?

한 예비역 장군은 “모자를 쓴 군인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은 부자연스런 일이며 간단히 목례 정도만 해도 예의를 갖춘 것이 된다”고 말한다.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의 행동은 군인으로서 당연한 몸가짐이지 굳이 칭찬까지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그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태도가 바람직한 일이었느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도 방문국 국가원수에게 예의를 갖추는데 그의 지휘를 받는 민간인 신분의 장관으로서 올바른 처신이었느냐는 얘기다.

김 실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는 보다 근본적인 곳에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여당 당적으로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내고 다시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안보정책의 수장을 맡게 됐다. DJ 때 국방부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천용택 전 국방부장관의 처신을 이번 김 안보실장 내정자와 비교하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천 전 장관은 1987년 대선 때 육본 민심참모부장으로 노태우 민정당 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이래, 1992년 대선에선 김영삼 민자당 후보, 이어 1997년엔 김대중 후보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해 ‘대통령만들기 3관왕’에 오르며 정권마다 국가비상기획위원장, 국방부장관, 국정원장 등으로 승승장구한 대표적인 정치군인으로 꼽힌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박흥렬 예비역 대장의 경호실장 내정이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높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경호실장 임명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는 그동안 총장직의 권위를 존중해 왔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된다.

특히 부하들의 존경과 신뢰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군 조직에서는 권위가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물론 DJ시절에도 육군대장 출신이 마사회 회장 자리에 앉고, MB정부 경호처장도 육군대장 출신이 맡았지만, 그들의 말로는 불행으로 맺거나 후배들의 따가운 시선뿐이었다. 각군 참모총장을 비롯해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정원장, 국세청장 등 정부조직의 수장을 지낸 이들의 정치권이나 정부직 진출을 자제하는 것은 해당 기관의 권위를 높이는 것과 함께 박 당선인이 지향하는 국격을 높이는 일과도 맥이 닿는 게 아닌가 한다.

국방부장관 내정자인 김병관 전 연합사 부사령관은 이미 대부분의 언론매체와 일부 여권의 지적처럼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신과 군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본다. 그로서는 무척 억울할 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그는 2010년 7월부터 2년간 국내 무기중개업체 비상근 고문으로 일하면서 2억1500만원을 받았다. 1년에 1억원 이상의 자문료를 받은 것이다. 이 업체는 지난해 차기 K-2 전차 100대분의 파워팩(엔진+변속기) 1800억원 어치를 독일에서 수입하기로 방위사업청과 계약을 맺었다. 업체 소유주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무기상으로 1993년 율곡사업 비리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 사실을 김 내정자가 몰랐을까?

그는 특히 사단장 시절 위문금 횡령의혹에 대해 “부대 위문금을 참모장에게 전달해 장병 복지를 위해 쓰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시 김병관 사단장의 참모장인 현재의 조정환 육군참모총장이 국회에 증인으로 불려나갈 수도 있게 됐다. 김 후보는 또 1986년 여덟 살이던 아들과 부인 명의로 땅을 사면서 증여세를 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이번 장관 내정 후 27년 만에 증여세 52만원을 납부했다. 국방 최고책임자가 엊그제까지 무기 수입업체의 고문으로 일했다면 그의 지휘를 받아야 할 65만 장교와 사병들이 과연 그를 믿고 명령에 따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까?

박근혜 당선인은 4살 무렵, 고 박정희 대통령이 교장을 지낸 광주 포병학교 군의관으로부터 맹장수술을 받았다. 수술 며칠 후 한밤중 그는 배를 움켜쥐고 동동 굴렀다. 육영수 여사와 군의관은 포병학교 지프차를 불러 전남대병원으로 후송해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박정희 교장이 노발대발했다. “아무리 내 딸이 아프더라도 규정을 어기면서 부대차량을 이용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업군인 박정희의 강직한 일면과 그의 딸 박 당선인이 어떤 분위기에서 성장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지인용’ 육사 교훈을 온몸으로 익혀 최고 계급까지 오른 김장수, 박흥렬, 김병관 세 사람이 명예·신의·정의의 ‘육사혼’을 제대로 계승할지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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