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에서 감지되는 아시아의 봄…오늘 입춘
산기슭 중턱, 조그만 암벽을 뒤덮은 얼음 밑동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냇가 넓적한 바위를 감싼 두툼한 얼음 옷이 여전히 둔중하지만, 밑동은 이미 고드름이 되어 상류에서 몰아쳐오는 굵은 물방울과 시나브로 어우러진다.
아직 제법 쌀쌀하지만, 큰 눈을 앞두고 잔뜩 찌푸린 저기압은 여느 초여름 못지않게 쾌활한 소리로 굽이치는 냇가에 음이온 듬뿍 머금었다. 신산한 기운이 등산객들의 거친 숨결을 낚아챈다.
봄이다. 아시아에 2013년의 봄이 오고 있다. 남북으로 기온 차도 크고, 난데없이 큰 눈이 진짜로 왔지만, 입춘 하루 앞둔 휴일 한국 경기도 남양주 소재 예봉산 자락에는 봄이 잠복하고 있었다.
약수터에서 만난 온갖 종류의 산새들은 사뭇 비장하다. 평소 같으면 아는 체도 안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산새들이 등산객의 쉼터에 바싹 다가든다. 등산객이 먹고 있는 비스킷을 낚아채기라도 할 기세. 터럭만한 곡기(穀氣)라도 간절한 모양이다. 우여곡절 사연도 많았던 산속의 겨울을 씩씩하게 견디고 봄을 맞는 산새들의 눈빛은 그렇게 생기(生氣) 등등했다. 누군들 그 생(生)의 애착을 알아채지 못할 리 없을 만큼.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은 태양의 위치를 기준해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보름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24절기 중 첫 절기다. 베트남과 일본, 중국, 한국 등이 이날을 기념한다.
베트남에서는 입춘(立春)을 ‘럽쑤언(L?p xu?n)’이라고 읽고 최대 명절인 음력설을 앞두고 친지들에게 복을 기원하는 날로 지낸다.
일본에서는 입춘(立春)을 릿슌(りっしゅん)으로 발음하며, 계절이 바뀌는 날(節分)로서 악귀와 액운을 몰아내고 행운과 복을 불러오는 풍습이 있다. 도깨비 모양의 그림에 콩을 던지면서 “오니와 소토 후쿠와 우찌(鬼は外、福はうち, 도깨비는 밖으로, 복은 안으로!)”라고 외치는 마메마키(豆まき)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리춘(l?ch?n)으로 부르며 전국적으로 성대한 민속놀이 풍습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흙으로 빚은 ‘봄맞이 소(春牛)’를 부숴버리는 풍습이 있다. 아이를 안은 아낙이 이 ‘봄맞이 소’를 3바퀴 돌면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무와 생강, 파, 밀빵을 먹는 풍습도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입춘 날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부적을 대문에 붙이고, 파와 마늘, 달래, 부추, 무릇(leeks, 파의 일종)?등 다섯 가지의 매운 나물인 ‘오신채’를 먹는 풍습이 있다. 맵고 쓴 나물들을 먹으면서 괴롭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참고 견뎌 내야 함을 일깨우려는 뜻.
입춘을 쇠는 네 나라 모두 이런 풍습의 명맥이 유지돼 오는 정도다. 농경사회를 벗어난 나라일수록, 그런 풍습이 있는 지도 모르는 국민이 더 많다고 보면 된다.
아무튼 한국에서 먼저 띄운 봄소식이 입춘을 쇠는 4개 나라는 물론,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멀리 서아시아와 중동에서도 후속보도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각각의 풍경은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