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의 시대…식수에 얽힌 에너지와 환경, 인권

“모든 문제가 얽혀 있다”…물 끓이느라 배출된 탄소 줄이니 일석사조?

마실 물이 귀한 지역에 살기 때문에 가족이 마실 식수를 하루 종일 길어 나르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는 10대 초반의 저개발국 소녀들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더러운 물을 끓일 나무까지 베어 날라야 하는 소녀들의 부모들은 십중팔구 밭 몇 뙤기 일구며 간신히 연명하는 경제적 최빈곤층에 속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그 나라 정치적 지배구조는 암담한 상황이게 마련이다.

이런 저개발국 약자들의 삶을 능동적으로 타개해 개인과 해당 사회가 지속가능하도록 해주기 위해 환경과 인권, 에너지와 교육 등 모든 사회적 문제를 융합(conversion), 당사자 눈높이에서 통찰적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지역사회 개발의 장기적 관점과 개발 주체들의 당면한 생존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실천해온 사회적 기업가들이 그들이다.

안전한 식수 위해 환경, 경제 모두 희생

케냐 국립박물관 소속 위니 무실라(Winnie Musila) 박사는 몇 년 전 “카카메가(Kakamega) 숲 주위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깨끗한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은 10%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나머지 90%의 사람들이 냇물이나 강에서 정제되지 않은 물을 마시다가 각종 수인성 질병에 자주 걸리자 그 뒤로 물을 끓여서 마신다는 의미다.

케냐 에무산다(EMUSANDA) 건강센터 소속 리비나 세-왐바니(Libinah Se-Wambani) 카운슬러는 “하루 50실링(50센트)을 버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물을 끓여 마셔라’라는 말은 그 적은 돈으로 장작을 사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카카메가(Kakamega) 지역주민인 테레사 메보(Teresa Mebo)씨는 “가끔 물을 끓이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장작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케냐에서 ‘라이프스트로우(Life Straw)’라는 순간정수기를 보급하는 로즈린 마폴리(Roselyne Mafoli)씨는 “대부분의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식수를 정화시키지 않아 설사병이나 장티푸스 같은 질병에 걸린다”면서 “통풍이 거의 되지 않는 실내에서 불을 지펴 물을 끓여 먹으니까 아침에 연소가스에 중독된 아이가 심하게 앓기도 한다”고 말했다.

무실라 박사는 “물을 끓일 때 일산화탄소 등 인체에 치명적인 가스들도 방출되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키는 각종 온실가스도 계속 방출된다”고 말했다.

정수기로 탄소배출권 획득해 투자금 회수

아프리카 일부 지역과 일부 아시아 저개발국에 라이프스트로우를 보급해 더 이상 나무를 태워 없애지 않고도 안전한 식수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실제로 배출되지 않은 탄소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CDM)의 방식에 따라 탄소배출권으로 환산된다.

배출되지 않은 잠재적 탄소배출량을 단위당 값을 매겨 은행에 판다. 많은 탄소배출권을 필요로 하는 에너지기업들이 탄소배출권거래소에서 배출권을 사들이는 주요 고객들이다.

라이프스트로우를 만들어 식수난을 겪고 있는 저개발국에 무료로 보급한 베스터가르트 프랑센(Mikkel Vestergaard-Frandsen)이라는 덴마크 기업은 그럼 무슨 돈이 있어서 이런 자선사업을 하는가. 탄소배출권을 판매한 돈으로 투자한 원금을 100% 회수한다. 케냐에서 거둔 성과가 대표적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원조자금을 내놓는 선진국들이 국내총생산의 일부를 떼어 조성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이 최초 씨앗 돈이 되기도 한다. 이런 돈으로 우선 저개발국에 라이프스트로우를 공급한 뒤 나중에 탄소배출권 사업으로 인가를 받아 돈을 회수해 갚기도 한다.

말라리아를 예방할 수 있는 모기장, 태양광조리기구(Solar Cooker) 등도 이 회사가 보급하는 품목이다.

지역사회 내부의 개발·성장동력 끌어내

나무를 태우지 않고 안전한 식수를 얻을 수 있게 됨에 따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 과정은 융합적이다. 숲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아 잠재적인 풍수해가 줄어든다. 안전한 식수로 지역사회의 보건위생 수준이 좋아져 유효수요가 증가한다. 온종일 물을 긷거나 나무를 베어오기 위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사라진다.

지역주민들 중 상당수는 이런 프로젝트의 실증작업을 위해 베스터가르트 프랑센에 고용돼 지역사회 소득도 늘어난다. 환경과 인권은 물론 소득까지 창출하는 융합적 지속가능개발 프로젝트의 이름은 바로 ‘카본포워터(Carbon for Water)’다.

카본포워터(Carbon for Water) 캠페인 담당자인 알리슨 힐(Alison Hill)씨는 “주민들이 깨끗한 물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충족시키는 장치를 적용하는 프로젝트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재원조달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자랑한다.

미켈 베스터가르트 프랑센(Mikkel Vestergaard-Frandsen) 베스터가르트 프랑센 대표(사진)는 “질병을 예방하고자 물을 끓이는 행위는 환경, 인권, 노동, 경제 등 다른 분야들과 현실적으로 모두 서로 연결돼 있다”면서 “인류의 보건위생을 위한 행위가 숲을 파괴해 기후변화를 부추겨 생존에 다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카본포워터는 지역 주민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능력에 우리의 투자를 결합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케냐에서 그는 정부와 협력해 가장 가까운 용수를 각 가정까지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해 정수기를 달아주는 일까지 마무리 했다. 세-왐바니(Libinah Se-Wambani) 카운슬러는 “어떤 비용도 없이 안전한 물을 얻었다”고 기뻐했고, 테레사 메보(Teresa Mebo)씨는 “이 사회에 정말로 도움이 된 베스터가르드(Vestergaard)그룹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등 아시아도 잠재력에 주목

김도형 베스터가트프랑센 아시아본부장(에이드그린 대표)

아프리카를 비롯해 물이 부족한 저개발국에 거주하는 상당수가 케냐 카카메가 숲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다. 동남아시아의 빈곤국가 중 하나인 캄보디아 식수 문제 역시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를 비롯한 아시아지역에서도 아프리카와 같은 카본포워터 실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베스터가트프랑센 아시아본부장을 맡고 있는 (주)에이드그린의 김도형 대표는 지난해 7월 카이스트(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열린 ‘적정기술, 탄소비즈니스 포럼’에서 정수기 보급과정과 투자비용을 1년 후 100% 회수한 과정 등 케냐의 사례를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김대표는 요즘 캄보디아에서도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지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현지의 원재료를 쓰고 대형화·산업화 되지 않고 소규모의 사람들이 생산 가능하며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개념의 ‘적정기술’을 현지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또 “환경과 에너지, 인권과 교육은 관념적으로 분리돼 있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모두 한데 얽혀 있다”며 “‘카본포워터’를 도입해 끓이지 않고도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주민들은 건강해졌고 아이들은 차별 없이 교육을 받게 됐으며 숲은 잘 보존돼 지역 성장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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