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주말] 남재희 전 장관 “이보게 야권, 대선 비긴거야”
함께 자리를 하면 재미도 있고, 머리와 가슴에 짠하게 남는 사람이 있다. 흔히들 까칠하다고 알려진 언론계 인사 가운데도 그런 분이 종종 있다. 남재희(79)씨는 그 면에서도 첫 손에 꼽힐 것이다. <조선일보>는 19~20일자 Why? 톱기사로 그의 인터뷰를 실었다.
20일 아침 댁으로 전화를 드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선배님. 조선일보 읽고 반가웠습니다. 전화 많이 받으셨지요?
“조선일보에서 너무 크게 써줬어요.”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요. 많이 배웠습니다.
“몇년 전 민음사에서 낸 <아주 사적인 정치비망록> 하고, <언론 정치 풍속사>에 나오는 얘기들인데, 뭘.”
인터뷰를 한 이한우 기자의 철저한 준비를 이렇게 에둘러 얘기하는 걸 보면, 남재희는 역시 감각 있는 ‘기자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한국일보 민국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기자를 하다 서울신문에서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다. 이후 공화당과 민정당에서 국회의원(4선)과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냈다. 인터뷰의 소제목과 몇 대목만 읽어도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한국정치 산 증인, 남재희 “민주당, 멘붕 빠질 필요없다”?
3년전 野 패배 족집게 예측, “문제인은 참 선전했어. 보수에 저항감 안줬잖아. 한국정치는 지리학이야. 박근혜가 되는 판이었어”
1980년대 여당 속 야 의원, “1984년 민정당사 점거 때 학생들과 대화 시도했지. 결국 모두 연행됐지만 그때 당대표가 나더러 ‘재야에 있을 사람이 민정당에 들어왔다’더군”
“박정희 ‘엔마쪼’(일종의 비망록 수첩) 장관계서 유명했지. 지금 딸이 그대로 하고 있어”
내 두딸은 반정부시위자, “1981년 광주항쟁 1주년에 큰딸이 유인물 뿌리다 체포돼 곧바로 사표냈는데 전대통령이 반려했지. 둘째는 DJ측근 아들과 결혼 대통령에 ‘죄송’ 뜻 전하자 축하한다며 축의금 보냈어”
국방위 회식사건도 화제, “군 고위장성과 술자리 시비 벽에 폭탄주잔 집어던지자 소장급 장성이 나를 발로 차. 당시 군부정권 아래서 군인에 대든 의원 소문났지”
여의도에 주는 쓴소리, “갈등, 순기능에 주목하라. 덮는 것만이 통합은 아냐. 법과 질서만으로 문제 풀려고 해서도 안돼”
고은 시인이 ‘만인보’에서 남재희에 대해 쓴 대목이 기사에 인용됐다.
‘의식은 야에 있으나/ 현실은 여에 있었다.
꿈은 진보에 있었으나/ 체질은 보수에 있었다.
시대는 이런 사람에게 술을 주었다.
술 취해 집에 돌아가면/ 3만권의 책이 있었다.
법과 대학동기인/ 아내와 /데모하는 딸의 빈방이 있었다.’
남재희는 지난 18일 팔순을 맞았다. 제천 출신의 ‘불후의, 그러나 참?불운했던’ 언론인 천관우 선생의 미망인이 거주하고 있는 충주가 남재희 고향인 줄은 이 글을 쓰려고 포탈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됐다. 지난 15일은?천관우(1925~1991) 선생 22주기였다.
한국정치 산 증인, 남재희 前 노동부 장관 “민주당, 멘붕 빠질 필요없다” ▶원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