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의회 ‘美 입양금지법’ 통과…’외교갈등’ 예고

러시아 고아들의 미국입양을 금지하는 법안에 대한 러시아 상원 투표가 예정된 2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경찰이 이 법안에 반대하던 시위자를 연행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 인권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피살사건 관련자들을 제재하는 마그니츠키법을 최근 채택하자 러시아는 대응조치로 미국인의 러시아 아동 입양 금지법 등을 추진하고 있어 양국간 외교 마찰이 커지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러시아 상원이 26일(현지시간) 국내외의 반대 여론에도 미국인의 러시아 아이 입양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대미(對美) 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상원 의원들은 이날 ‘인간의 기본 권리와 자유, 러시아 국민의 권리와 자유 훼손에 참여한 인물에 대한 대응조치에 관한 법’이란 이름의 법안 승인 표결에서 143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은 없었다.

해당 법안은 지난 21일 하원 심의를 통과했다. 이날 상원 승인까지 얻은 법안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명하면 발효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실장은 이날 상원 심의에 앞서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면 대통령은 2주 안에 이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연내에 서명하면서 법안이 내년 1월부터 발효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대미 인권 법안은 지난 2008년 미국인 양아버지의 부주의로 숨진 두 살배기 러시아 입양아 디마 야코블레프의 이름을 따 ‘디마 야코블레프 법안’으로도 불린다. 야코블레프는 양아버지가 더운 날 자동차 안에 가둬두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디마 야코블레프 법안’은 러시아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러시아인에 해를 끼치는 범죄를 저지른 미국인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이들에 제재를 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미국인들의 러시아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러시아 내에 보유한 자산을 동결하고 그들에 의해 운영돼온 단체들의 활동을 중단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인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거나 러시아의 이익에 위협이 되는 프로젝트나 프로그램, 기타 활동을 추진하는 비정부기구(NGO)의 러시아 내 활동도 금지된다. 미국인의 러시아 아이 입양 금지 조항도 법안 내용 가운데 하나다. 이 법안이 채택되면 러시아와 미국이 지난해 체결해 올 11월 발효된 입양 관련 협정도 효력이 정지된다.

미국의 對러 인권법 채택에 대한 보복 차원

러시아의 대미 인권 법안은 미국이 러시아인 인권 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피살 사건에 관련된 러시아 인사들에 대한 제재 내용을 담은 ‘마그니츠키 법안’을 채택한 데 대한 대응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4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종 서명을 거쳐 마그니츠키 법안을 채택했다.

마그니츠키법은 사건에 관련된 러시아 관리는 물론 그 가족과 친척에게도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고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 국내외에선 그동안 미국인의 러시아 아이 입양 금지 내용을 담은 법안을 두고 격렬한 반대 여론이 제기됐다. 러시아 인권단체들은 죄 없는 아이들을 정치 문제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며 법안에 반대했다.

비판론자들은 여건이 좋지 않은 러시아 보육원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기회를 아이들에게서 빼앗는다며 비난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양육권자가 없는 고아가 74만명에 이른다.

심지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이 법안이 채택되면 미국으로 입양된 러시아 아이들의 양육 환경을 점검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진다며 반대했다. 미국 백악관도 하루 전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인 입양 금지법안 추진을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이 채택한 마그니츠키법을 내정간섭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한 러시아 지도부는 대응 차원으로 ‘디마 야코블레프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따라 양국의 심각한 외교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유엔은 26일(현지시간) 러시아 상원이 자국 아동의 미국 입양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앤서니 레이크 유니세프 총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는 ‘국가 간의 입양’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며 “러시아 정부는 현재 자국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 힘들게 지낸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상원이 이날 국내외의 반대 여론에도 미국인의 러시아 아동 입양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미국 대응 인권법안을 의결한 것을 지목한 것으로 해석됐다.

레이크 총재는 “우리는 러시아 정부가 가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를 촉구한다”며 “여기에는 국내 입양은 물론 해외 입양 등 보호시설 수용 이외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1일 하원에 이어 이날 상원까지 통과함에 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명하면 곧바로 발효된다.

레이크 총재는 아동 복지 문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며 “러시아 정부는 어린이 보호를 위한 노력에서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하기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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