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박태준 회장님 영전에 바칩니다

아시아엔은 오는 11월11일 창간 3돌을 맞습니다. 그동안 독자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엔은 창간 1년만에 네이버와 검색제휴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제휴 이전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어, 그 이전 발행된 아시아엔 콘텐츠 가운데 일부를 다시 내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13일 별세한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생전 설립한 ‘베세머상수상기념재단’의 제1기 장학생 허동성(현재 미 UCSD대학원 물리학 박사과정)씨의 어머니 최장월(56)씨가 <AsiaN>에 추모글을 보내왔다. 박 명예회장은 1987년 5월1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국금속학회 총회에서 철강부문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베세머상을 수상했다. 박 회장은 이를 기념하고 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1999년 ‘베세머상수상기념재단’을 설립해 2000년부터 과학고와 민족사관고 등의 우수 과학영재를 선발해 해외 대학에서 공부를 시켜왔다. 포스코청암재단과 베세머상수상기념재단은 2009년 1월 통합 운영되고 있다. <편집자>

박태준 명예회장과 장옥자 여사

지난 13일 밤 서울에서 걸려온 동생 전화를 받고 저는 한동안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포항제철 박태준 명예회장님 별세 소식을 듣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박 회장님께 평생 잊지 못할 은혜를 입은 저로서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벌써 10년이 훨씬 지난 일입니다만, 저는 꼭 이 일을 알려야겠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제 아들 허동성은 1999년 당시 민족사관고등학교 3학년으로 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타겠다는 의욕에 불타 있었습니다. 세계 속에 우뚝 선 과학자로 한국을 빛내는 인물이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요. 당시 한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해외 명문대 진학을 꿈 꾸었습니다.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제 아들은 피나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이러한 노력과 재능이 인정받아 2000년 MIT와 CALTECH(California Institue of technology)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잃고 지속된 경제적 어려움으로 동성이의 꿈은 무산될 처지에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교육부장관을 만나 간청도 해보았고, 삼성, 엘지, 현대 등 대기업에 해외유학을 위한 장학금에 대해 문을 두드리고 애원했지만 관심을 보이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이때 민족사관고등학교 설립자 최명재 이사장께서 제 아들의 해외 명문대 합격소식과 함께 학업을 지원할 스폰서를 찾는 내용의 글을 일간지에 게재했습니다. 박태준 회장님께서 이 기사를 접하신 후 ‘베세머수상기념장학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연락해왔습니다.

박 회장님의 도움으로 제 아들 허동성은 MIT에서 물리학과 뇌과학을 전공했습니다. 지금은 UCSD대학원에서 수리뇌과학을 전공하며 내년 1월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입니다. 런던대학(University College London)의 개츠비(Gatsby)연구소에서 박사후과정 제안을 받은 상태입니다. 1999년 박 회장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저희 모자는 지금도 박 회장을 은인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박태준 명예회장님께서는 대한민국 역사에 많은 큰 일들을 이루어 내신 분이란 사실은 잘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국가 인재육성을 위한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 최초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인재들이 해외 명문대에 진학하여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베세머상수상기념재단’이라는 장학재단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계십니다. 이후 해외유학생을 지원하는 관정장학재단, 이건희장학재단, 대통령장학금, 미래에셋증권장학재단 등의 설립이 이어지며 수많은 인재들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부부가 2009년 3월6일 프레스센터 집무실에서 황희철 화백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다. 최장월(맨왼쪽)씨가 아들 허동성(사진 가운데)과 함께 그림을 붙들고 있다.

저는 우리사회 누구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해외유학 장학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에게 유학의 길을 터주신 박태준 회장님을?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주변사람들에게 회장님께서 하고 계신 장학사업에 대하여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관심을 보이던 팔순의 황희철 화백께서 뜻있는 분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서 박태준 회장님의 초상화를 그려주셨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닉슨, 부시, 클린턴, 오바마 등 미국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린?분이시지요. 저는 이 초상화를 회장님께 드리기 위하여 2009년 3월6일 아들 허동성과 함께 프레스센타 그 분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사무실에선 회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큰딸 박진아 베세머상수상기념재단 이사께서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그날 박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앞줄 박태준 회장 부부와 뒷줄 오른쪽부터 박진아씨·최장월씨·허동성씨

?“포스코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보람있는 일은 인재양성이다.”

박 회장님께서는 포항 벌판에 제철회사를 만들면서 교육시스템을 함께 갖추었던 일들, 서울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교사들을 선발하여 몇 배의 보수를 주며 유치원부터 포항제철고등학교와 포스텍에 이르기까지 교육기관에 엄청난 열정을 쏟은 얘기까지 저희 일행에게 들려주셨습니다. 특히 포스텍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습니다. 세계 최고수준의 공대를 세우겠다는 포부로 설립했고, 열정과 능력을 갖춘 김호길 총장을 선임하게 된 배경 등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은 박 회장님의 소박한 책상 가운데에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을 모셔둔 사실입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결코 잃지 않는 신의와 충성심은 우리 젊은이들이 반드시 배워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심을 지키는 한결같음이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과의 인연은 2001년에도 있었습니다. 박 회장님께서 코넬대병원에서 수술을 마치신 후 회복을 위하여 머물고 계셨던 뉴저지로 베세머상수상기념장학재단 제1기인 제 아들 허동성(MIT), 제2기 윤영섭(Harvard)학생에게 비행기표를 보내 주셨습니다. 박 회장님께서 이 두 학생을 많이 보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피도 한방울 안 섞인 이들 학생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큰 딸 박진아 이사께서는 보스톤에 있는 이들 두 학생을 이따금 찾아와 밥을 사며 격려하곤 했습니다.

박태준 회장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분이 기른 인재들은 무럭무럭 자라 대한민국을 더욱 부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회장님 부디 영면하소서.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최장월 올림

2009년 1월 27일 박태준 회장 초상화 앞에서 허동성, 황희철 화백, 황복순 권사, 최장월씨(왼쪽부터)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최장월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