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철수 불출마 예상했던 엉터리 기자의 소회
19일은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바득바득 우겨왔던 기자의 예상이 빗나가 온종일 기분이 ‘시험 망친 중학생’ 같은 하루였다. 편집국 회의 시간도 15분 남짓 늦는 바람에 겸사겸사 벌(罰)로 아이스크림을 돌렸다. 동료기자들이 앞으로 나의 정치전망을 우습게 생각할 걸 생각하니 기분이 영 꿀꿀했다.
치기가 앞선 때문인지 몰라도, 편집국 TV 앞에서 다 함께 안철수 원장의 대통령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보면서 몇 가지 자잘한 것만 눈에 들어왔다.
먼저 안 원장 옆에서 질의응답 내용을 연신 수화로 전달하는 분이 인상적이었다. 기자회견장에 청각장애인이 있는지, 있다면 몇 명이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TV 생중계를 한 몇몇 방송사 중에서 수화하시는 분을 화면에 줄곧 담아 내보낸 방송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있었다면 참 고마운 일이지만, 기자의 추정대로 하나도 없었다면, 개그콘서트의 유행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 ‘수화’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수화’란 말입니까.”
두 번째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에서 온 기자들은 기자회견 때 질문을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질문하려고 손을 들었는데 진행자가 지명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세 번째는 안원장이 답변을 한 뒤 “옳소!”라는 탄성과 함께 박수갈채를 보냈던 사람들이 많이 거슬렸다. 부지불식간에 “저런 사람들이 안 원장을 망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상당수가 지켜보는 기자회견장에서 꼭 저런 제스처가 필요할까 싶었다.
안 원장이 대선출마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자의 추측은 그의 한 강연을 보고나서였다. 안원장은 자신과 함께 일하던 한 성취욕 강한 직원이 암에 걸리면서 비로소 목표성취 지상적인 삶을 후회하며 주변의 자그마한 가치를 추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산행에서 산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은 전체 산행시간 중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할 뿐인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 정상에 머무는 순간을 절대시하고 그 순간을 제외한 등산과 하산의 모든 과정을 고통스런 ‘과정’으로 치부하며 감내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기자는 안원장의 이 말 때문에 그가 정치적 ‘꼭대기’에 오르겠다는 식의 ‘정상(頂上) 지향적’ 삶을 택하지는 않으리라고 본 것이었다. 게다가 “한국사회를 바꾸려”는 방식이 꼭 대통령 되는 길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른 우려도 있었다. 대통령의 임기가 사실상 2년6개월밖에 안 되는 ‘5년 단임제’ 아래서 또 한 명의 양심적 지식인이 역대 대통령이 겪었던 큰 고통과 슬픔의 전철을 되풀이 할까 염려되기도 했다.
기자는 한국이 나라를 혁신할 정치인을 좀체 허여하지 않는 관료과두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겉으로는 정치인과 거대 정당이 전권을 행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료사회가 정치인들을 앞세우거나 희생양으로 삼아 주기적으로 과오를 털어내고 가는, 그런 막강하고도 안정적 관료과두권력의 지배구조로 보는 것이다. 국민들은 어렴풋이 파악된 구조적인 악(惡)들의 조각 기억들을 퇴임 또는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는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에 하나씩 둘씩 끼워 넣어 불태워 없앤다. 그렇게 5년마다 잊어주면 그만이다.
현행 5년 단임제 대통령제 하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나오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 안철수 후보 역시 당선돼 불행한 마지막을 맞는 대통령으로 기록된다면, 장차 한국 정치에 관한 한 ‘희망’은 수십 년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원장 대선출마 여부에서 보기 좋게 틀렸듯이, 이런 기자의 분석과 걱정, 전망이 다시 한 번 죄다 엉터리였으면 차라리 좋겠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