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 이 기사] 다시 점화된 ‘재야 대통령’ 타살 의혹 진상 밝혀져야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맞서 싸우던 독립운동가 출신 ‘재야 대통령’ 장준하 선생 의문사가 37년 만에 타살 의혹으로 다시 점화 됐다.
한겨레는 8월 15일자 1면 머리기사로 선생이 1975년 8월 주검으로 발견된 지 37년 만에 처음으로 추모공원 이장 과정에서 검시가 이뤄졌는데, 선생의 머리 뒤쪽에 6㎝ 정도의 구멍과 머리뼈 금이 발견됐고, 이에 대한 서울대 법의학 교실의 검시 의사가 낸 “인위적 상처로 보인다”는 1차 의견을 토대로 타살 의혹을 실었다.
2면에서는 1975년 8월 선생이 숨진 뒤 경찰의 ‘실족사 발표’ 이후 37년 동안 끊이지 않던 타살 의혹 배경과 정체 모를 의문사 진상 규명 방해 공작에 대해 보도했고, 3면에서는 사망 당시 의사의 육안과 손에만 의존한 허술한 주검 검안과 현장 감식, 사진 촬영조차 하지 않은 경찰의 어설픈 사망 경위 조사에 대한 비판적 내용과 1993년 민주당,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의 미완의 진상 규명 노력을 전했다.
또 한겨레는 8월 16일자 1면에 머리기사로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와의 인터뷰 내용인 “아버지 장준하 타살 증거 나와… 국가가 진상 밝혀야”라는 절규를 올렸다.
2면에서는 중앙정보부가 선생을 집중 사찰한 사실과 사망 사건 처리 과정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고 밝힌 의문사위 조사보고서 내용을 소개하고 ‘추락사 목격자’로 알려진 김용환 씨가 석연치 않은 진술과 불명확한 행적으로 미루어 중앙정보부가 고용한 사설정보원일 것으로 추정했고, 3면에는 호권 씨와 인터뷰한 37년간 한 곳에 정착하지 못 하고 뿔뿔이 흩어진 선생 유족들의 생활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실었다.
국가는 겉으로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는데 실질은 일제에 부역한 일본군 장교 출신이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잡아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국가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쳤던 이라면 누가 그것을 마땅한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장준하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대위 출신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립군들을 살육한 일제의 만주군 중위를 지낸 것에 주목하면 고 장준하 선생이 60·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해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에도 굽히지 않고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선 이유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한겨레는 “장 선생은 언젠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일제가 그냥 계속됐다면 너는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살육을 계속했을 것이 아닌가?’라고 면박준 일도 있다”는 일화도 전하고 있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만주군 복무와 광복 뒤 남조선노동당 가입 같은 과거를 손금 보듯 알고 있던 장 선생이 자신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했고, 이 때문에 장 선생이 숨진 직후부터 실족사로 처리된 사인을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실과 추정이 직접 관련이 있든 없든, 장준하 선생뿐만 아니라, 유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모든 의문사의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서슬 퍼렇던 당시 장남 호권 씨는 생명을 위협받는 공포에 쫓겨 말레이시아로 도망가고,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후에 귀국했다 다시 붙잡혀 고문당하고는 싱가포르로 또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24년 동안의 국외도피 생활 끝에 2004년에야 귀국했다.
의심이 들었어도 부친의 의문사 진상을 밝혀달라고 하소연할 엄두도 못 내고 함구해오다 “장준하 선생 타살 증거가 나왔다”며 37년 만에야 국가에 진상 규명 요구하는 고 장준하 선생 유족의 고단한 행보에 바로 뒤틀린 우리 현대사가 그대로 비치는 듯하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일본에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비롯한 역사적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지난날의 잘못 인정과 사과를 촉구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우리 내부의 잘못도 제대로 밝히고 바로잡아야 외국에 대한 주장도 그만큼 떳떳하고 무게감이 클 것이다.
The AsiaN 편집국 news@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