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시대 긴급제안] “한국인이여, 한국을 떠나라!”

<인터뷰> 아시아 기업 종합광고대행사 소울메이트 계성국 사장

발상 전환 “지구촌을 무대로 삼고, 일터가 있는 곳이 우리 동네!”

“한국 대기업에서 10년 일하면 해외 기업으로 직장을 옮겨 일할 능력이 완전히 고갈된다고 보면 됩니다. 조직 적응 능력, 그러니까 기업에 속한 ‘사람’에 대한 시각이 달라요. 시스템과 룰을 중요시하는 외국회사들의 기업문화와 달리 한국기업들은 윗사람의 지시와 ‘보여주기’식 성과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재교육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죠.”

지난 7일 서울 명륜동 아시아엔(The AsiaN) 편집국을 찾은 아시아기업 광고대행사 소울메이트(www.soulmate-intl.com) 계성국 대표는 일순간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제 경험을 들려주고, 사고방식을 고치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가다가는) 개개인의 문제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미래가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계성국 사장은 “세계 경기 침체로 기업은 광고예산부터 줄이고, 손은 많이 가되 마진은 박한 구조로 변해가는 광고산업계 추세 속에서 광고회사 사장 인터뷰가 뭔 뉴스가치가 있냐”면서 이 같이 말했다.

대만에 본사를, 중국 광저우와 홍콩, 한국에 각각 지사를 둔 소울메이트는 종합광고대행사다. 한국의 LG그룹, 한국인삼공사, 한국관광공사, AT센터 등이 소울메이트의 고객이고, 네슬레(치즈)와 차이나 모바일,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동남아권 식음료 대기업 YEOS 등도 그의 고객이다.

계성국 사장이 유학파라서 본사를 아시아로 옮긴 게 아니다. 그 역시 토종이다. 국민대학교 출신의 미술학도로 한국 최고 종합광고대행사 중 하나인 LG애드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프로듀서로 청춘을 보냈다. LG애드 근무 때 중국 주재원한 게 해외근무의 전부였던 그가 나름 괜찮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고생길을 자처한 이유가 뭘까.

– 혹시 잘린 거 아닙니까.

▲ 800명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대기업 계열의 광고대행사에서 13년을 일했는데, 이맘때면 누구나 나머지 13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게 됩니다. 광고회사는 다른 업계보다 조금 더 빠릅니다. 이 차를 타고 그냥 가야 할까, 아니면 내려서 조그맣더라도 제 차를 하나 굴려야 할까 고민 했어요. 결론은 하차였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광고사업을 하기 싫었습니다. 한국 광고시장 뻔합니다. 대기업 퇴사하면 대기업 광고회사 주변에서 가질 수 있는 파이가 정해져 있어요. 따지고 보면 죄다 업계 선후배들과 경쟁해서 뺏어 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구조.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함께 살아왔고 함께 살아갈 사람들과 그런 관계 맺고 살아간다는 자체가 싫었습니다.

– 뻔하다는 게 구체적으로.

▲ 지금 한국의 종합광고대행 대기업들인 C, O, D, L 등은 모두 재벌(대규모기업집단) 계열사로, 계열사들 물량 소화하기에도 벅차요. 외국 대기업이 종합광고대행사를 계열사를 두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이런 환경에서 창조성이 경쟁력의 요체인 광고대행사가 강하고 합리적으로 성장하기는 어렵죠.

계열사 내부거래가 아니더라도 한국 광고업계 대부분은 관계 중심적인 영업과 매출구조입니다. 그게 지겨웠어요. 실력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이미 다 정해진 거래처들을 대상으로 공개경쟁입찰을 하거나 형식으로 피티(Presentation)를 받아주고, 업계에는 경쟁심사로 거래처를 최종 선정한 것으로 소문을 퍼뜨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 창조성이 생명인 광고산업계에서 그런 일이 있다니 놀랍네요. 그렇지만 지금 진출해 있는 아시아 인접 국가들도 뭐 별반 다를 게 있나 싶은데.

▲ 예. 뭐 큰 차이가 아닌 듯싶지만, 홍콩은 확실히 다릅니다. 전 세계 다국적 대기업들의 본사와 아시아본부가 홍콩에 많습니다. 여기는 실력으로 승부할 만합니다. 어제 새로 광고회사를 차리고 업계 인맥이 전혀 없는 초짜가 사업제안서 달랑 하나를 들고 대기업을 찾아가서 담당자를 매료시켰다면 그가 경쟁 피티에 참가할 자격을 줍니다. 한국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풍경이지요.

– 한국이 동아시아권에서 가장 투명성이 낮다는 말씀이세요.

▲ 꼴찌는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투명성 순위를 매기자면 홍콩→대만→한국→중국 순입니다. 창조성(creative) 순위는 좀 다르겠지만, 투명성이 장기적으로는 낮다면 그만큼 창조성 순위도 투명성 순위를 따라갈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몇몇 큰 회사가 국가를 움직이고 있는 점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잠재력과 창조성이 고갈돼 끝이 보이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 제가 한국에서 회사를 차렸다면 벌써 망했을 겁니다.

– 그럼 나가셔서 성공하신 걸로 봐도 되는거죠.

▲성공은 과하고 ‘자리 잡은’ 정도로 해두지요. 자수성가했기 때문에, 핸디캡을 극복하려고 더 노력했던 것 같고, 운 좋게 유능한 사람들의 집단에 가서 좋은 사람들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들은 항상 의지와 관계없이 나타나더군요.

처음 나가서 외로웠습니다. 중국 베이징주재원 시절엔 LG전자를 위해 일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대기업에서 흘린 국물이 적잖았죠. 그런데 그런 미련을 버리고 새로 중국권에서 사업을 벌였을 땐 1년 동안 피티 60번 했는데, 단 한 번도 성과가 없었죠. 넋 놓고 길을 걷다가 어느 빌딩 유리문에 부딪혀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어요. 직원 전부가 외국인이라 아주 가끔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와인 바(Bar)에서는 풀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외로움.

– 한국 젊은이들 확 바꿔야 하는 거죠.

▲예. 해외에서 오래 일하면서 본 외국 젊은이들 보고 놀란 적이 많습니다. 미국, 영국, 호주, 유럽 등지에서 용돈 모은 거 톡톡 털어서 홍콩 건너온 학생들이 돈 떨어질 때까지 인턴 생활을 합니다. 스스로 스펙 만드는 것이지요. 그 중 졸업한 친구들은 필사적인 인턴생활 끝에 돈 떨어지기 직전에 현지에서 직장을 구합니다. 한국 학생들이 스펙 쌓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죠. 잘 섞이지도 않는 짧은 외국생활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그를 채용하는 한국 기업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부터 “지구촌을 무대로 삼고 일터 잡는 곳이 우리 동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 한국 기업, 예비 기업인들도 마찬가지겠죠.

▲인도 타타그룹 자동차 회사 영업 때문에 인도에 가서 느낀 점은 참 후진적이라는 것이죠. 소가 도로에 막 다니고. 그러나 그 사람들 기업운영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과 함께 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순일 것입니다. 일단 영어로 소통이 되고, 선배들이 터를 잘 잡아 놨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인들 요즘 중국 광저우(廣州)만 가도 무시당하고 그래요. 우리 스스로가 다른 것을 우리 생각의 틀에 맞춰 평가하고 무시하는 버릇부터 고쳐야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인정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안 그러면 앞으로도 죄다 한국인을 무시할 겁니다.

사업도 배수진을 치고 나가야 합니다. 돌아갈 생각,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으로 밖(해외)에 나와서 사업 하면 100% 실패합니다. 배수진을 쳤다는 각오로 덤비면 한국인들 누구나 성공할 수 있어요. 원래 독하잖아요. 바늘 꽂으면 어떻게든 들어간다는 말도 있잖아요.

미대 출신이라서 그런가. 46세의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고, 홍콩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홍콩 느와르 영화에 나올 법한 배우 삘(feel)도 난다. 귀고리까지 하고.

맞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광고회사 사람들은 꼭 저렇더라.

<영상=김수찬>

6 comments

  1. 마지막에 귀고리까지 하셨다고 하여 사진을 보니 안보이네요.
    동영상을 보니… ^^ 나오네용. ㅎㅎㅎ

    46세에 귀고리… 참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 ^^ 잘 소화되시네요.

  2. 부장대표님 넘 멋져… 완전 감동! 아시아를 더불어 글로벌 더 큰 무대에서 더욱 좋은 성과를 얻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북경오면 우리 광모임에 납셔서 자리를 빛내주세요.

  3.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LG전자 홍보 부서 함께 일하던 홍길영입니다. 가끔 은실씨 통해 소식 들었습니다. 보기 좋네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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