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서구 시대사상의 산물, 올림픽의 위기를 보다

좀 과장된 생각일지는 모르겠다. 이번 영국 런던 올림픽은 합리주의와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워왔던 서구 가치체계의 몰락, 주류 시대사상의 분산과 이동 양상을 잘 보여준다.

민족주의 정서로 비분강개 하는 게 아니다. 한국의 어린 펜싱선수를 좌절케 한 오스트리아 심판은 이웃 나라 독일선수가 한국 선수를 공격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시계를 멈추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그 심판은 유럽 지역의 펜싱선수들과 페이스북에서 돈독한 친구관계를 맺고 있었고, 독일 펜싱국가대표 선수의 아버지와는 실제 친구다. 그 선수가 속한 민간 펜싱팀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이 됐다. 이 심판은 “자신의 판정에 문제가 없었으며 규정에 맞는 판정이었다”고 밝혔고, 국제펜싱연맹은 억울하게 패한 한국선수에게 ‘스포츠맨십을 기리는 상’이라며 급조된 특별상을 서둘러 수여했다.

한국 선수들도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데 한 몫을 했다. 배드민턴 경기의 ‘져주기 경기’는 오심보다 더 볼썽사납다. 향후 약체팀과 경기를 치르려, 아니면 자국 출신의 다른 팀을 위해 일부러 져주는 행위가 적발돼 실격처리 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가. 공정성과 투명함, 승리(victory)보다 참여(engagement)가, 성공보다 노력이 더 중요한 가치였기에 올림픽은 자주 지구촌 민중들을 감동시켰다. ‘지구인’이라는 사고의 틀에도 다가서게 했다.

이런 가치들을 잘 정리해서 지구촌에 잘 소개하고 공유하는데 서방국가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전쟁과 내전, 기아와 자연재해, 독재와 식민주의에 신음하는 지구촌 민중들에게 이런 보편적 가치는 많은 감동을 줬고, 이런 가치를 공유하는 데 앞장 선 서구인들에게 고마움과 함께 존경심을 보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나타난 행태를 보면, 서구인들의 그런 노력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음이 포착된다. 인권과 투명성, 공평무사함, 실력으로 승부하는 이미지로 치장된 서구인들이 실상은 그렇지 않음이 드러난 것이다. 서구인들은 자주 중국인들의 ‘꽌시(關契)’를 ‘구시대적이고 미개한 관계관리의 운영원리’라며 폄훼하기도 했다. 기자는 동양식 ‘연고주의’에 대해 눈을 크게 뜨고 크게 도리질 치며, 혀를 내두르는 서구인들을 많이 봐 왔다. 적잖게 그들의 의견에 공감해 왔기에 이번 올림픽에서 드러난 서구인들의 치부는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동서고금, 사람은 먹고 살만해야 한 단계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하게 되는 것일까. 재정위기로 경제가 추락했지만, 대다수 유럽민중들에게는 여전히 우월의식과 선민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지구촌의 모범이 됐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온 서구인들에게 최근 아시아의 전 방위적인 성장과 도전은 사뭇 위협적일 것이다. 서구인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 민중들을 ‘공감(empathy)’의 대상이 아닌 ‘계몽’의 대상쯤으로 여겨왔기에 어쩌면 이런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몇몇 학자들은 스포츠 경기가 전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럴 것 같다. 그러나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나타난 몇 가지 사례들을 보면 그런 주장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요즘 전쟁은 민중이 주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의 정치적 과두지배집단, 대자본의 거의 100%가 연루돼 있는 무기산업계가 주도한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어제까지 친했던 이웃도 이튿날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다. 진짜 범인은 누군지 모르지만, 나의 부모형제가 그들 손에 죽는 일로 나는 ‘총알받이’로서 전쟁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쟁은 민중 전체를 처참하게 만들 뿐이지만 전리품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지배자들이 모두 챙긴다. 노예만 부리면서 살아온 자들에게 ‘밭을 갈아 식량을 마련하라’는 선택이 ‘전쟁’이라는 손 쉽고 달콤하며 거리낌 없는 선택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없다. 그래서 뜬금없이 올림픽을 보면서 전쟁이 아주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물론 이런 느낌은 반드시 기우(杞憂)여야 하지만.

한국의 한 저널리스트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개인적으론 올림픽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올림픽이 원래 지구인의 화합이란 명분을 내걸었지만, 상업주의와 왜곡된 애국주의, 나아가 스포츠 패권주의로 점철되는 걸 보면.”

서열을 매기지 않고, 참여와 관전의 기쁨을 특정 국가의 국경으로 가두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올림픽이 가능할까. 인류가 과연 그런 올림픽을 치를 의사와 능력이 있을까.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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