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회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⑨] 라즈돌노예에서 김일성의 러시아 행적을 좇다

아무르 답사 중 제88 국제보병여단 랜드마크 앞에 선 필자 이택순 전 경찰청장

라즈돌노예 88번지 구병영 건물,

라즈돌노예 기차역에서 차량으로 약 5분 우수리스크 시 방향으로 이동하면 도로변에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2층 건물을 볼 수 있다. 매우 낡아서 곧 철거할 건물로 보이지만, 이 벽돌 건물의 유래는 만만치가 않다. 당초 예정에 없던 이 건물을 방문하게 된 것은 안내자의 특별한 제안 때문이었다. 이 건물은 북한의 김일성 세습왕조와 관련해 중요한 비밀을 간직한 장소였다.​

김일성(본명 김성주 1912-1994)의 항일독립투쟁에 관해서는 남북한 당국과 학계에서 진위 여부에 관해 상호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중립지대에서 김일성을 연구한 하와이대학 서대숙 교수의 연구를 참고하는 게 비교적 객관적일 것 같다.

서대숙 교수의 책,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서대숙 교수의 저서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1988년, 청계 연구소)을 인용한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1912년생)였다. 김성주는 현재 평양의 외곽에 소재한 외갓집 만경대에서 출생했다. 김성주는 항일운동가인 아버지 김형직(1894-1926)을 따라서 만주를 7세부터 오가다가, 13세 때 1925년 만주로 이주한다. 1927년에는 만주 길림성 위원중학교에 재학 중에 파괴단체에 가입한 혐의로 체포된 된다.​

김성주는 만주에서 중학교를 수학하고,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중국어에 능숙하고 만주지역 공산주의 활동에 가담할 수 있는 유리한 기반을 쌓았다. 그를 만주지역 조선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중학교 학력은 당시 하급 공산주의자에게는 고급 학력이었다. 그는 이론가이기보다는 현장 투쟁가형이었다.​

1930년 7월에는 만주거룬지역에서 항일 중국공산당 유격대에 가담하였고, 1932년 4월 25일(북한 인민군 창설기념일) 만주 안도현에서 항일빨치산 부대를 결성했다고 북한에서는 기록한다. 그러나 항일빨치산 부대 결성 부분에 관해서 서대숙 교수는 ’20세인 김성주가 항일빨치산 부대를 창설했다는 것은 과장이고 그 일원으로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전설적인 만주공산당 지도자 양징위가 이끄는 동북인민혁명군(후일 동북항일연군)에 가담해 백두산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대 활동을 하였다. 이때 이름을 김성주에서 김일성으로 개명한다. 동북인민혁명군은 일본군의 만주침략에 대항해 만주지역의 공산당이 만든 항일조직이었다. 중국 동북지역 특성상 만주지역 공산당과 소련 코민테른 극동지부의 영향력하에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본다.​

김일성(본명 김성주)은 37년 6월 4일, 혜산진 인근 마을 보천보에 침투해 일제 관공서를 습격한 사건을 벌이면서 조선에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그 후로도 김일성은 항일투쟁을 계속했고 일본에 굴복하지 않았다. 1937년 9월 중일전쟁 발발 후에는 만주지역의 게릴라조직을 분쇄하기 위해 대규모의 관동군이 투입된다.

라즈돌노예 지역과 훈춘 크라스키노 도로 <조미향 제작>

동만주와 간도지역에서 항일무장조직이 거의 괴멸될 즈음, 김일성 등 16명의 조선인 빨치산은 1940년 8월부터 러시아로 대피 이동을 시작한다. 훈춘-크라스키노 산악 루트를 통해 동료와 함께 1941년 초에 러시아로 불법 입국한다. 소련 군당국에 의해 체포된 김일성 일당은 조사 후에 만주 동북항일연군(만주 공산당 항일무장단체)의 확인으로 석방되어 이곳 라즈돌노예 병영에 거주하게 된다.

건물 왼쪽 끝 2층이 김일성 가족이 생활하던 공간이다. 사진 속 인물은 필자

소련 당국은 이미 1935년부터 고려인(러시아 이주 조선인) 지도자 수천 명을 검거하여 일본간첩으로 처벌하고 추방하였다. 1937년 9월 9일에는 전 고려인 17만여 명을 안보상 이유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비슷한 시기에 소련은 만주에서 피신한 무장세력 김일성 일당은 왜 고려인에 준하여 처벌하거나 추방하지 않았을까?

​스탈린이 전략을 바꿔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이들을 활용하려 했다는 설과, 동북항일연군이 소련의 지원으로 조직된 만주지역 항일조직이기 때문에 중국인 취급을 받아 처벌을 면했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소련 비밀경찰 NKVD(KGB의 전신)에서 김일성 일당을 첩자로 이용하여 만주의 중국인과 조선인 반일 활동을 조종하려 했다는 분석이 있다.

라즈동노예 마을 라조 88번지 이층 방, 김정일의 출생지

그리고 이곳 붉은 벽돌 2층 건물 라즈돌노예 마을 길 88번지 군부대 병영 (일명 B 캠프)에 머물게 된다. 만주 빨치산 부대의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첫째 처 김정숙(1917-1949)은 김일성을 찾아 소련 라즈돌노예 지역으로 입국하였다. 여기에서 1942년 2월 16일 출생한 첫째 아들이 김정일(러시아 명 유리 이르세노비치 김, 일명 유라)이었다. 출생 때 산파 역할을 한 러시아인 간호사 엘냐(당시 17세)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진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바롭스크 아무르 브야츠코예 지역, 88여단 창설지

실제로 스탈린의 지령에 의해 1942년 연해주 외국인으로 구성된 제88국제보병여단이 아무르 강가에 창설된다. 1942년 7월 라즈돌리예 군 막사에 거주하던 김일성은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 주변 브야츠코예마을(일명 A 캠프)에 설치된 88여단에 배치되어 소련군 대위로 임명받는다.

1942년 이후 1945년까지 김일성 일당은 소련의 급식과 보급으로 연명했고, 교육과 훈련을 받는 이외에는 무장독립 투쟁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제88국제여단이 1942-1945년 이곳 브야츠코마을에 주둔했다

제88여단에 김일성과 함께 입소한 동료가 후일 북한의 실력자가 되는 최용건(1900-1976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 김책(1903-1951 부수상), 최현(1907-1982 인민무력부장)이다. 이들은 김일성보다 모두 연장자이며 만주 빨치산 투쟁의 선배였다.

그러나 그들은 소련군의 신임을 획득한 영리한 김일성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김일성을 옹립하여 핵심 권력층이 된다. 이른바 북한 권력의 김일성 직계 만주 빨치산파(혁명동지)이다.

아무르 강가 브야츠코예 가는 도로, 광활한 타이거 숲 지대

우리는 하바롭스크 탐사 때 제88국제보병여단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바롭스크 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70kM) 소요되는 아무르 강가의 시골마을 타이거지대 숲속이었다. 88여단 기념물은 어떤 이유인지 건설 중에 중단되어 있었고, 퇴색된 88여단 안내판이 기념물과 함께 거창하게 서 있었다. 이곳이 김일성과 만주빨치산이 소련군의 지도하에 활동한 곳이다.

여하튼, 유사한 삶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맞거나 중앙아시아로 쫓겨간 선배 독립투사들이 무수히 많았다. 청산리 전투영웅 홍범도, 무장독립운동가 김경천, 조선의 레닌으로 촉망받던 독립지사 김 아파나시 등과 비교해 볼 때 김일성과 그 일당은 대단한 행운아였다.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직후 그들은 소련군의 안내자로 9월 19일 소련군함을 타고 원산에 상륙하여 평양으로 입성한다.

​소련군은 33세의 청년인 김성주를 김일성 장군으로 소개하었다. 민족주의자들은 물론 국내파 공산당원들도 그의 정체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소비에트식 공산체제를 수립하려는 소련군의 전폭적 지원으로 김일성은 조만식과 박헌영을 제압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남한에서는 김일성장군 전설은 일본육사 출신 독립투사 김경천이 중심인물이며 또 다른 독립운동가 김두철도 그 이름을 썼다고 보고 있다. 북한 김성주도 김일성을 가명으로 사용한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원조 김일성장군은 김경천이었다.

북한 현대사는 김일성(김성주)은 혁명성지 백두산 주변에서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유일한 항일영웅‘으로 ‘무적불패’의 전사였다고 기록한다. 아들 김정일도 백두산 삼지연 밀영(비밀병영) 귀틀집에서 항일 독립투쟁 중 출생한 것으로 되어있다.

백두산 귀틀집과 라즈돌노예 병영, 김일성 왕조의 비밀

이른바 백두혈통인 김일성 후손만이 “혁명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며 김일성을 신격화하여 권력세습을 정당화하고 있다. 혁명영웅의 러시아행 도주와 수많은 독립영웅의 존재, 러시아에서 김정일의 출생비밀은 북한의 세습왕조에게는 수용할 수 없는 역사이었을 것이다.

이 붉은 벽돌 건물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기록이 있는 한 언제가는 숨겨진 비밀이 북한에도 스며들어 갈 것이다. 이제 극동의 중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시 탐사를 시작해야겠다.

이택순

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실크로드 도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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