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보이지 않는 ‘우상’과 폭격에 희생된 ‘어린이들’

폭격에 희생된 어린이들

마음껏 뛰놀아야 할 눈망울 초롱초롱한 어린아이들이 거리에서, 학교에서, 아니 집에서, 영문도 모른 채 마구 죽어간다. 또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중동 마을 곳곳의 비참한 모습이다. 민족적 적대감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그 전쟁의 밑바닥에는 종교의 갈등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노인과 어린아이의 목숨을 빼앗는 종교적 신념이라니, 차라리 무신론자가 보다 인간적이겠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들 셈족의 3대종교는 아브라함을 한 조상으로 모시고 모세5경도 모두 정경(正經)으로 여긴다. 한 뿌리에서 나온 저들이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는 것은 그 종교의 본질이 아니다. 종교의 광신자들이 지닌 완고한 배타적 원리주의 도그마(dogma) 때문이다.

​교조적(敎條的) 신념으로 제 몸에 자살폭탄을 두르기도 하고, 남의 목을 서슴없이 칼로 내리치기도 한다. 구약시대 이래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오는 오랜 싸움… 중세를 피로 물들였던 허망한 십자군전쟁과 무엇이 다른가?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퍼뜨리는 저 도그마의 정체는 신앙이 아니다. 신(神)의 이름으로 세속을 지배하려는 정치적 권력의지의 폭력일 따름이다. 도그마를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자살폭탄 테러는 순교가 아니다. 도그마를 거부하는 희생의 죽음이 참된 순교다.

​“(요시야 왕이) 성전에서 아세라 상(像)을 꺼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불사르고… 성전 가운데 남창(男娼)의 집을 헐었더라.”(열왕기하 23:6,7)

놀랍지 않은가, 다른 곳도 아닌 성전에 우상 아세라의 조각상과 남창의 집이 있었다! “너를 위하여 어떤 신상(神像)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십계명의 첫 선언(신명기 5:8)이건만,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스라엘은 번영과 풍요의 물신(物神) 아세라를 함께 섬겼다.

하나님만으로는 부국강병과 물질적 풍요의 현실적 욕망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 밖의 불신자들이 아니라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서 물신숭배와 도덕적 타락을 척결해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하나님과 재물(mammon)을 함께 섬길 수 없다.”(누가복음 16:13). 예수의 가르침이다. 하나님과 물신의 혼합신앙이 곧 우상숭배다.

​소외된 이웃의 비통한 삶을 외면한 채 자신과 가족의 건강, 사회적 성취, 물질적 풍요를 갈구하며 성례전(聖禮典)과 종교의식에 몰두하는 신자들, 헌금과 면세혜택을 바탕으로 거대한 부(富)를 쌓아가는 어떤 종교단체들…

그들은 망각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는 화려한 면류관을 쓴 제도종교의 교주(敎主)가 아니었음을… 고난의 가시관을 쓴 십자가의 처형수, 삶과 죽음으로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희생의 어린양이었음을…​바알과 아세라가 눈에 보이는 유형(有形)의 우상이라면, 물신과 도그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우상이다. 우상숭배는 남의 종교 안에 있는 미신이 아니다. 자기 종교 안에 있는 물신숭배와 근본주의 도그마가 보이지 않는 우상이다.

그들은 망각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는 화려한 면류관을 쓴 제도종교의 교주(敎主)가 아니었음을… 고난의 가시관을 쓴 십자가의 처형수, 삶과 죽음으로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희생의 어린양이었음을…

​바알과 아세라가 눈에 보이는 유형(有形)의 우상이라면, 물신과 도그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우상이다. 우상숭배는 남의 종교 안에 있는 미신이 아니다. 자기 종교 안에 있는 물신숭배와 근본주의 도그마가 보이지 않는 우상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면, 사탄도 그 옆에 자기 소굴을 판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탄식이다. 악령(惡靈)은 세속의 자리를 노리지 않는다. 빛나는 천사의 모습(고린도후서 11:14)으로 다가와 신자들의 영혼을 노린다. 물신과 도그마의 우상은 종교 밖이 아니라 거의 모두 종교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옛 이스라엘 성전에 유형의 아세라 우상과 남창의 집이 있었다면, 오늘의 종교와 신앙의 터전 곳곳에는 무형의 우상들이 도사려 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은 손과 망치로 부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은 손이나 망치로 부술 수 없다. 오직 마음에서 몰아내야 한다.

“진리를 찾으려는 사람은 믿을지언정 진리를 찾았다는 사람은 믿지 말라.” 도그마의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앙드레 지드의 충고다. 우상의 타파 없이는 영혼의 자유도 없다. 이념과 사상의 도그마, 번영과 풍요의 맘몬, 기복(祈福)과 형통의 물신… 그 보이지 않는 우상들은 자유의 영원한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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