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범씨를 KBS 사장보다 보도본부장으로 밀었으면…
[아시아엔=최보식 <최보식의언론> 편집인, 전 <조선일보> 기자] 역대 정권마다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해서는 늘 야권의 반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다 임명됐다. 정권에서는 ‘내 사람’이라고 확신해서 밀릴 수 없다며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힘들게 임명했지만, 그 KBS 사장이 정권을 위해 크게 보탬이 된 적은 없었다. 특히 우파정권에서 그랬다.
윤석열 정권은 ‘공영방송의 운동장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해서 민주당 등 좌파 진영과의 험한 전투(?) 끝에 문화일보 출신 박민씨를 사장으로 임명했지만, 그가 사장이 된 뒤로 KBS가 언론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되찾은 것도 아니고, KBS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졌으며, 무엇보다 현 정권에 크게 도움이 됐던 것 같지 않다.
박민 현 사장의 후임으로 박장범 메인뉴스 앵커가 차기 사장 후보로 내정됐다. 박장범씨는 지난 23일 KBS 이사회에서 야권 이사 4명 모두 표결을 거부한 가운데 여권 이사 7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과반을 넘겨 사장 최종 후보로 선임됐다. 통상 이런 과정에는 과거 정권에도 그랬지만 대통령실의 입김이 작용한다.
박장범 앵커에게는 ‘조그만 파우치’가 별명처럼 따라다닌다. 지난 2월 윤 대통령 신년대담에서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의 조그만 백”이라고 그가 질문에서 먼저 꺼냈던 말이다. 그때의 ‘김여사 봐주기 인터뷰’ 공로로 차기 KBS 사장 후보가 됐다고 보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술 친구(박민)가 김여사의 사람(박장범)으로 바뀌었다”는 조롱이 나온다.
박장범씨의 직군 후배들인 KBS 기자들이 기수별로 반대 연명 성명을 내고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30개 기수 5백명 가까운 기자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을 좌파 성향 등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후배 기자들은 박장범씨가 자신들의 직업적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박장범 앵커가 사장이 되면 앞으로 더 노골적인 ‘용산 방송’ ‘땡윤뉴스’ 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박장범씨 이미지가 그렇게 비치도록 한 것이지, 사실 그가 사장이 된다고 해서 KBS가 그렇게 바뀔 리는 없다. 사장이 인사권과 경영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권의 입맛에 맞게 뉴스 방향이나 내용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선에서 따르지 않을 뿐더러 금방 저항에 부딪힌다. 기자와 PD집단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심지어 조선일보 같이 사주가 있는 언론사에서도 실제 그게 쉽지는 않다.
야당이나 좌파 진영 같은 바깥 쪽의 반대는 그렇다 쳐도, 이런 기자 후배들의 반대는 박장범씨가 KBS 사장이 되려는데 있어 가장 치명적이다. 자신의 직속 후배들에게조차 ‘기자’로서 존중을 못 받으면 사장이 된들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릴까 싶다.
대통령실은 언론사 구성원들은 기본적으로 말이 많은 집단이라는 걸 잊고 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정말 ‘아마추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자기 편’이라고 여기면 그 자리에 맞는지를 따지지 않고 대놓고 꽂아넣어왔다. 대통령실이 내심 KBS의 협조(?) 같은 걸 원했으면 차라리 박장범씨를 사장보다 보도본부장으로 밀었으면 말도 안 나오고 더 소기의 목적에 맞았을 것이다.
박장범씨는 국회 인사청문회와 대통령의 임명재가를 거쳐 KBS 사장에 최종 임명된다. 아마 대통령실은 박장범 사장 임명을 밀어붙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가뜩이나 없는 점수를 까먹는 일만 계속 될 것이다. 빨리 손 터는 게 낫지, 무슨 가치나 철학이 있거나 남는 장사도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 아래는 지난 2월 이 글의 최보식 필자가 쓴 ‘인터뷰 문법을 모르는 KBS 앵커의 대통령 특별대담’ 제목의 칼럼 전문이다.
내가 인터뷰를 오래 해왔던 입장이어서 그런지 ‘KBS 특별 대담-대통령실을 가다’를 보면서, 대담을 진행하는 KBS 앵커가 참 딱해 보였다. 방송 첫 질문부터 ‘저 친구는 이런 인터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 대통령이 신년대담에서 목적을 갖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탓할 게 없다. 인터뷰라는 형식이 본래 그런 거다.
그럼에도 방송 후 대담 전체의 이미지가 대통령의 일방적인 선전장, 심지어 ‘대한뉘우스를 본 것 같다’는 혹평을 받게 된 것은 대통령실의 충성과 KBS의 과잉협조도 작용했겠지만, 그 자리에서 질문을 하는 대담자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좀 심하게 말하면 대담자인 KBS 앵커가 ‘작품’을 망친 것이다.
원래 방송 대담은 대부분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다. 대통령실이 “프롬프터 없이 진행했다”라고 홍보했지만, 대통령실과 KBS는 어떤 질문을 할지 사전에 조율했고 윤 대통령은 질문지를 받은 상황에서 참모들과 토의하고 시뮬레이션을 했을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녹화가 끝난 뒤에는 편집과 검토 승인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년대담 방송이 막상 ‘대통령의 선전장’이라는 비판을 받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짜고 치는 고스톱’ 구도 하에서 결코 짜고 치는 것처럼 비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대담자의 역할이다. 그런데 대담을 진행한 KBS 앵커는 윤 대통령이 자신의 목적대로 선전, 홍보, 설명, 변명을 할 수 있도록 적극 ‘판’을 깔아주거나 유도하는 식의 질문으로 일관했다. 하나마나한 ‘나쁜’ 질문을 했다는 뜻이다. 비록 대통령의 말씀을 듣는 자리이지만, 신년 대담에서 국민들은 대통령의 ‘일방적인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다.
KBS 앵커는 대통령과 대담을 진행하는 데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컸을 것이다. 여러가지 주문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에게 잘 보여야 하는 ‘KBS 조직’의 직원 자격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 국민이 대통령에게 묻고 싶어하는 질문을 하는 언론인의 역할을 잊어버린 것이다.
대담 내내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할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고는 대통령 답변을 듣는 걸로 끝내고 있다. 대통령 답변은 대통령의 자유와 권리이지만, 그런 답변에 대해 추가질문과 반박질문을 하는 것은 대담자의 의무이며 권리다. 하지만 KBS 앵커는 거의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일방적 답변에 제동을 걸거나 좀 무례하게 비칠지라도 꼬리를 잡는 질문을 내놓는 장면이 없었다는 건 우리나라 저널리즘의 전반적인 수준을 의심 받게 한다. 이렇게 하면 권력과 언론의 ‘사교장’이 되는 것이지 ‘인터뷰’가 아니다.
한가지만 예를 들면, 윤 대통령이 ‘명품백’과 관련해 “시계에다가 몰카까지 들고 와서 했고 선거를 앞둔 시점에 1년이 지나 이렇게 터트리는 것 자체가 정치 공작”이라고 했을 때, “그럼에도 국민들 상당수는 이를 ‘대통령 부인의 뇌물 수수’로 보거나 김 여사의 도덕성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했어야 했다. 그래야 질문과 답변의 균형이 맞춰지는 것이다.
또 윤 대통령이 사과를 하는 대신 “아내가 내치지 못해서 박절하게 그걸 막지 못했다”고 변명했을 때는, “이러시면 대통령이 국민보다 아내를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추가 질문을 했으면 윤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다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대담을 반면교사로 삼아 후배 기자들의 각성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름대로 힘들었을 KBS 앵커에게 이런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