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시선] 러셀의 역리逆理와 성경 속 ‘음행하다 적발된 여인’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한복음 8장에서)

20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에 에피메니데스라는 크레타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가 외쳤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이 말은 과연 진실일까, 거짓일까?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된다. 물론 그도 거짓말쟁이다. 그렇다면 그의 말은 거짓이고, 따라서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그의 말이 거짓이라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그 역시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진실이다. 따라서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는 에피메니데스의 한마디는 이처럼 스스로 진실이면서 거짓이고, 거짓이면서 진실이기도 한 모순의 연속이다.

이런 얘기도 있다. 어떤 마을에 ‘모든 주민은 스스로 이발을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한 달에 한 번 이발사에게 가서 머리를 깎아야 한다’는 규칙이 제정됐다. 마을의 유일한 이발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규칙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머리를 깎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머리를 깎지 않는다면, 그는 그가 깎아 주어야 할 대상에 속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에게 머리를 깎여야 한다. 이 역시 존재할 수 없는 모순이다.

1901년 영국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 같은 직관적 모순을 ‘러셀의 역리(Russell’s paradox)’로 설명했다. 그런데 이 패러독스는 너무나 논리적이어서 오히려 논리학의 기초를 위태롭게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 역시 모순 아닌가. 러셀은 결국 계형階型이론으로 이 모순을 극복했고, 헝가리 출신 천재 수학자 요한 폰 노이만은 여기서 공리론적 집합론을 끌어냈다. 신논리학과 수학기초론의 기저가 된 것이다.

필자가 참석한 오늘 새벽기도회의 설교 스크립처는 요한복음 8장 1~11절 말씀이었다. 간음한 여인에 대한 징치를 놓고, 예수와 서기관 및 바리새인들이 펼치는 한판의 지혜싸움(wisdom battle)이 주된 내용인 너무나도 유명한 예화다.

음행하다 적발된 여인을 바리새파들이 데리고 예수 앞에 나타난다. 그리곤 모세의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만약 예수가 여자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율법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징벌해야 한다고 답하면 율법은 지켰으나 그 순간 예수는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냉혈한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의외의 답변으로 좌중을 압도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 하나둘 자리를 떠 광장엔 예수와 여인만 남게 된 것이다. 그때 예수가 말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얼마나 멋진 반전이자 파격인가. 오늘 새벽 그래서 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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