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칼럼] 다산의 외침 “나의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하겠다”
철학적 시선이 무엇이고, 그 시선을 작동시키는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젊다. 젊은이라면 시대를 읽고, 시대를 답답해하고, 시대를 돌파해 나가려는 꿈을 가져야 한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아파해야 한다. 거친 야망으로 가득 찬 짐승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미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고만 앉아서 그것들이 옳으니 그르니 하며 기존의 구조 속으로 편입되려는 사람은 사실 젊은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이 대목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다산 선생의 순진한 낙관론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기실 그분이 내건 삶의 기치는 대단했다. 다산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1집 ‘시문집'(詩文集)제16권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학문을 하는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나의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하겠다.”(신아지구방新我之舊邦)
낡은 나의 나라를 새롭게 하는 것이 다산 선생이 평생 품은 포부이자 사명이었다. 다산 선생은 <경세유표>(經世遺表)의 서문 격에 해당하는 ‘방례초본인'(邦禮草本引)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그칠 것이다.”(개일모일발蓋一毛一髮, 무비영이無非病耳. 급금불개及今不改, 기필망국이후이其必亡國而後已)
말씀이 매우 매섭게 들린다. 바로 이어서 다그치듯 하신 말씀을 들으면 그 엄중함에 심장이 터질 듯하다.
“이러하니 어찌 충신 지사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 있을 것인가?”(사기충신지사소능수수이방관자재斯豈忠臣志士所能袖手而傍觀者哉?)
지금 우리는 심각한 각성이 필요한 위중한 상황 속에 빠져 있다. 어찌 뜻있는 사람으로서 팔짱만 낀 채로 수수방관할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 다산 선생의 이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한다. 주위를 자세히 살피고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아픈 시대를 구하기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해를 해로만 보고나 달을 달로만 보는 지(知)에 매몰되어 한편을 지키는 일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해와 달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하는 명(明)의 활동성을 동력으로 삼아 차라리 황무지로 달려가야 한다.
이미 있는 것에 편입되어 안정되기보다는, 아직은 이름 붙지 않은 모호한 곳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가야 한다. 흔들리는 불안을 자초해야 한다. 훈고에 갇힌 조국에 창의의 기풍을 생산하려 덤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