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격호의 꿈, 통일과 평화의 색으로 번지다
[아시아엔=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 전 국회의원] 삼성, 현대, 대우, 국제 등 한국의 거의 모든 재벌은 권력에 의해 수난을 겪었다. 물론 개개기업들 경영상의 불법행위도 있었지만, 6.25 이후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정, 국가주도의 압축경제와 급속한 산업발전이라는 대한민국 특유의 근대화과정이 빚어낸 사건도 많았다.
특히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적 여론몰이를 위한 기업총수 망신주기식 잡아넣기도 많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픈 우리의 민낯이자 아릿한 기억이다.
그런 역사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재벌도 있으나, 이런 재벌들 중에 가장 국민과 가까이 지냈으면서도, 아니 지금도 가장 밀접하게 생활화되어있으면서도 유독 가혹할 정도로 폄훼된 기업이 롯데가 아닐까 싶다.
껌과 초콜릿, 과자로 온 국민의 입을 달달하게 위로하고, 온 가족이 꼭 한번은 가고싶어하는 놀이공원, 서울 사는 사람이면 며칠에 한번씩은 올려다보게 되는 123층짜리 자랑스러운 건물을 지은 기업, 롯데.
롯데는 시시때때로, 수시로 정권에 시달려온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가장 늦게 검찰의 제물이 되었다. 시기적 문제 때문인지, 아들문제 때문인지, 여배우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민 머리 속에 가장 선명하게 폄훼 이미지가 남아있는 기업이 바로 롯데이기도 하다.
그러나 롯데는 그렇게 간단히 입에 굴러다니던 껌을 뱉듯이 함부로 폄훼당해서는 안 되는 기업이다.
한일 양국에서 대기업을 일으킨 전무후무한 기업인, 혈혈단신 밀항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빈손으로 대망을 이룬 식민지 청년의 경제적 성공은 영화나 소설감이련만, 아직 그런 것 하나 만들어지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롯데는 일본의 10대 재벌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는 5대 재벌이다. 한때 신격호 회장의 재산은 대한민국에서 1위, 세계에서는 3-4위였다.
내가 그를 남달리 보는 이유는 다른 재벌들과는 달리 그가 문학청년이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돈에만 꽂혀있는 재벌이 아니라, 탈세와 절세, 재산축적 등을 위해 마구잡이로 미술품을 사모으는 그런 재벌이 아니라, 신격호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예술과 낭만을 추구한 순수한 문학청년이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그 엄혹했던 시절, 그는 회사명칭에 비련의 여인 이름을 주저하지 않고 붙였다. 우리가 다 아는 롯데. 괴테의 소설 ‘친화력’의 여주인공이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의 애칭인 ‘롯데’로 회사이름을 정한 문학청년이 일궈낸 기업이 바로 롯데그룹이다.
12-13년 전, 내가 북한인권운동을 할 사단법인 이름을 ‘물망초’라고 지을 때 많은 사람들은 무슨 꽃이름이냐고들 반대했었다.
좀 더 강하고, 진취적인 명칭, 무슨무슨 연합, 연대 또는 국가, 사회 등이 들어간 거대한 이름으로 하라고. 그래야 사람도 모이고 돈도 들어온다고.
하물며 돈을 벌어야 할 회사 이름인데 왜 반대가 없었겠는가? 게다가 비운의 여인 이름이라니!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롯데를 발족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렵게 성장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그 시기를 평생 잊지 않았다.
다른 창업주들처럼 자신의 성과를 과장하거나 자랑하는 책을 내지도 않았다. 정치권에 줄 대지도 않았다. 대신에 그는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을 상기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기억하고 도왔다.
풍선껌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 경리직원 한 명이 야근을 하다 회사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신격호 회장은 장례식이 끝난 후 고인의 부인에게 월세 받아서 자녀들 공부시키라고 다세대 연립주택 한 동(棟) 전체를 주었다.
그런 신격호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그 딸과 손녀딸이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장학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젊은이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한부모 가정,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가족은 물론, 탈북자들을 돕고 있다.
과문한지는 몰라도 탈북자를 내놓고, 직접적 공개적으로 돕는 기업은 롯데뿐이다.
그것도 연간 억대 이상으로… 놀랍지 않은가? 다른 기업은 도와주면서도 뒤로 또는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우리가 줬다고 말하지 말라며 건네는데, 롯데는 당당하게 준다.
이렇게 롯데가 후원한 장학금으로 인사동에서 탈북화가 2명과 한국화가 2명, 우크라이나 여류화가 등 5명이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는 “롯데 신격호의 꿈, 통일과 평화의 색으로 번지다”라는 멋진 타이틀로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지난 15일 시작해 20일 막을 내렸다. 전시회는 롯데로부터 지원 받은 이은택 ‘통일을 위한 환경과 인권’ 대표가 관할했다.
이은택 대표는 수 많은 탈북자 중에 내가 가장 믿고 좋아하는 젊은이다. 나는 “신격호 회장이 하늘에서 정말 좋은, 믿을 수 있는 탈북자를 선택해 지원하고 있다”고 개막식 축사를 했다.
참 훌륭한 기업인 신격호 회장이 참 훌륭한 북한 인권운동가인 이은택 탈북자를 확실하게 알아본 것이다. 이은택 대표는 없는 돈에 ‘디딤돌’이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 우울한 젊은이를 변호사로 키워내기도 한 정말 귀한 탈북자다.
참고로 지금 전시회를 하고 있는 탈북화가 두 명 중 한 명은 내가 2010년 심양에 가서 만났던 친구, 다른 한 명은 동국대 나의 연구실에서 며칠 같이 지내며 그림을 그리던 친구다.
그리고 유일한 여성으로 참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출신 화가는 마리아, 락스퍼영화제의 홍보대사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만날 사람은 어디서든 반드시 만난다.
이은택 대표의 더 왕성한 활동과 남북한 출신의 젊은 화가들, 고통 속에 있는 우크라아나 화가는 물론 롯데까지 모두가 신격호 회장의 꿈을 잘 이뤄나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