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김관식’ 김진경

김관식 시인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나는 그의 시를 변변히 읽은 것도 없어
하지만 그는 엄연히
내 시의 가장 큰 스승이야
내 젊은 시절
그와 강경상고 동창이라는 큰형은
나를 만류해보려고
늘 그를 들먹거리곤 했지
보릿고개를 넘는 시골에 시를 씁네 하고
하얀 양복에 백구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미친놈이라더군
만석꾼의 자식이었던 그는
그 많은 재산 다 털어먹고
막걸리 주전자를 원망하며 두드리다
서울의 어느 빈민가에서 죽었다더군
그는 그렇게 내 시의 가장 큰 스승이 됐어
말하자면 멸망의 스승인 셈이지
누구나 멸망을 싫어하는 요즘 같은 땐
가끔 그를 떠올려
시가 멸망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일 수 있는거지?

*金冠植(1934~1970, 충남 논산, 시인·번역문학가, 미당 서정주의 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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