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필경筆耕’ 심훈

우리의 붓끝은 날마다 흰 종이 위를 갈耕며 나간다.
한자루의 붓 그것은 우리의 쟁기요, 유일唯一한 연장이다.
거칠은 산기슭에 한 이랑의 火田을 일려면
돌부리와 나무 등걸에 호미 끝이 부러지듯이
아아 우리의 꿋꿋한 붓대가 몇 번이나 꺾였었던고?

그러나 파랗고 빨간 ‘잉크’는 정맥과 동맥의 피
최후의 일적一適까지 종이 위에 그 피를 뿌릴 뿐이다.
비바람이 험궂다고 曆史의 바퀴가 역전逆轉할 것인가
마지막 심판날을 기약하는 우리의 정성이 굽힐 것인가
同志여 우리는 퇴각을 모르는 전위前衛의 鬪士다.

‘박탈’, ‘아사餓死’, ‘음독’, ‘자살’의 경과보고가 우리의 밥벌이냐
‘아연활동俄然活動’, ‘검거’, ‘송국送局’, ‘판결언도’, ‘오년’ ‘십년’의
스코어를 적는 것이 허구한 날의 직책이란 말이냐
창끝 같이 철필촉을 베려 모든 암흑면을 파헤치자
샅샅이 파헤쳐 온갖 죄악을 백주白晝에 폭로하자.

스위치를 젖혔느냐 윤전기가 돌아가느냐
깊은 밤 맹수의 포효와 같은 굉음轟音과 함께
한 시간에도 몇 만장이나 박아 돌리는 활자의 위력威力은,
민중의 맥박을 이어 주는 우리의 혈압血壓이다.
오오 붓을 잡은 자여 위대한 심장의 파수병把守兵이여!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