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사나이’ 디킨스②] 채플린도 애독자, 다윈과 학술원 회원도

찰스 디킨스(오른쪽)와 찰스 다윈

디킨스는 10대 초반, 무능한 아비와 무심한 어미 아래서 중노동을 해야 했다. 어렵게 크다보니, 디킨스는 편집광적으로 돈을 모았다. 인기작가가 된 뒤에도 가난하게 될지 몰라 늘 불안해 했다. 방문하는 곳마다 은행을 찾아 예금을 해두었다고 한다. 디킨스 사후, 미처 찾지 못한 계좌가 많았을 정도였으니…소설가지만 역사책도 냈다. 그 책이 바로 <영국사 산책>이다. 자신의 잡지 ‘하우스홀드 워즈’에 3년 동안 연재한 것이다. BC 50년부터 19세기까지 영국 역사를 왕들의 연대기로 풀어냈다.

당대에는 작품 낭독회가 작가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다. 특히 디킨스는 자신의 책을 낭독하고 다니는 것을 즐겼다. 연기 공부도 한 덕분에 그의 낭독은 매우 실감났다. 미국이나 호주에서 낭독회를 할 때도 엄청난 인파가 왔다. 죽기 직전, 1870년 3월 고별낭독회를 했다. 그해 여러 차례 낭독회가 기획됐다고 한다. 5월에도 낭독회를 가지려다 의사의 권고로 취소했다. 병세가 심해지자 “그때 했어야 하는데…..더 벌어둘  걸…”이라고 푸념했다. 낭독회로 돈은 많이 벌었지만, 워낙 중노동이라 그의 건강을 해친 원흉이었다.

찰리 채플린

천재 찰리 채플린도 그를 굉장히 좋아했다. “디킨스는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유머감각을 지닌 소설가다.” 채플린은 특히 <올리버 트위스트>를 좋아했다고 한다. 유년기에 겪은 런던의 빈민가 생활이 떠올라서였다. 채플린은 비슷한 주제의 <키드>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영국 SF드라마 닥터후, 새 버전 에피소드3에 등장한다. 1869년 크리스마스날 영국 카디프에서 크리스마스 캐럴 낭독회를 진행하던 모습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 탐정 포와로는 디킨스 소설에 푹 빠져 사는 이로 묘사된다. 2020년 3월 시공사에서 3권 짜리 찰스 디킨스 선집을 발표했다. 거기에 국내에 번역된 바 없는 <피크위크 클럽 여행기>가 들어있다.

올리버 트위스트 역시 불후의 명작이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최초의 소설로 통한다. 피터팬의 주인공 역시 어린이이긴 하지만. ‘피터팬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만큼 제임스 배리가 쓴 소설도 많이 팔렸다. <늙지 않는 소년>. 그러나 그 책은 1904년 처음으로 연극 상영을 전제로 희극으로 쓰였다. 흥행에 성공한 뒤에 다시 소설로 펴낸 것이다. 그러니, 60년 전에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디킨스가 창안한 것이다. 대히트를 쳤지만, 호사다마요 화불단행이다. 정말 좋은 일만 오지 않고, 그 끝에는 불행이 찾아온다.

디킨스는 최고의 인기작가 반열에 올라 성공을 거뒀다. 더는 세상의 누구도 부러워할 게 별로 없을 정도다. 글만 계속 쓸 수 있고, 좋은 작품만 만들어내면 된다. 어느 날 부인 캐더린과 처제와 같이 연극을 보고왔다. 귀가 후 함께 살던 처제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5시간만에 숨을 거뒀다. 1838년 봄, 어느 토요일 17살의 꽃을 다 피우지 못한 나이였다. 불과 5시간만에, 예고없는 죽음 앞에 디킨스는 무너졌다. 병환이 깊은 부모님의 죽음에는 마음의 대비를 하게 된다. 그러니 ‘메멘토 모리’를 되뇌며 충격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왕성한 필력으로 작품을 쏟아내던 디킨스가 펜을 놓는다. 그가 작가로 성공한 뒤 처음으로 집필을 중단한 사태였다.

디킨스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 처제의 죽음!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디킨스는 다른 작품에서 처제의 기억을 되살렸다. <옛 골동품 상점>(The Old Curiosity Shop)이다. 이 작품에서 ‘막내 Nell의 죽음’은 처제의 영혼을 위무하는 진혹곡이다. 그후 1842년부터 그에게 강연 요청이 쇄도한다. 이 무렵 진화론의 위대한 천재 찰스 다윈과 함께 학술원 회원이 됐다. 우리는 학술원 회원에 대한 의미나 가치를 대단찮게 여기는지 모르지만, 영국 미국 프랑스 등 문화 선진국에서 학술원 회원이 된다는 건 더할 수 없는 최고의 영예다.

불과 28세에 문재를 인정받고, 최고의 영예를 안았으니까 엄청나게 빠르게 성공을 거둔 거다. 영국에서 바람을 일으키자, 신대륙인 아메리카에서도 강연 요청이 쇄도해 대륙으로 건너갔다. 미국으로 건너간 건, 강연 요청에 응하려는 목적뿐만이 아니었다. 저작권 문제였다.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초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대공이 제안한 바이마르 추밀원 고문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베스트셀러였지만, 해적판으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온 수익은 별로였다.

1841년 집필을 중단하고, 6개월 예정으로 리버풀에서 증기선 브리타니카를 타고 보스턴에 도착했다. 당시 미국의 뉴욕 보스턴 유수의 신문들이 디킨스의 도착을 1면 톱기사로 도배했다. 워싱턴 어빙, 헨리 롱펠로, 에드거 앨런 포를 비롯한 당대의 미국 작가들과도 만났다. 그러나 환영 파티에서 디킨스가 저작권 문제를 꺼내자 미국 언론들은 돌변해 그를 공격했다.

미국 언론들도 해적판에 기생하는 기득권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말이다. 당시 디킨스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앞서 ‘니콜라스 니클비’ ‘옛 골동품 상점’ ‘바나비 러지’ 3권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했다. 니콜라스 니클비만 나중에 히트를 치긴 했지만, 두 작품은 대실패였다. 흥행의 작가 디킨스는 고심 끝에 크리스마스의 사나이로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신작을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글 쓰는 누구에게나 ‘마감시간(Dead Line)’은 피를 말린다. 그러나 이게 없으면, 글이 잘 쓰지지 않기도 한다. 작가나 기자에게 마감은 필수요 필요악인 셈이다. 6주 시한이었다. 선언을 하고 언제까지 쓰겠다고 하면 어떻게든 만들어 낸다. 디킨스도 그럴 요량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게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였다.

상상으로 스쿠루지 캐릭터를 창조, 상상 속에서 매일 다른 등장인물들과 작품을 완성해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디킨스의 작품들에 대한 이해도 어느 정도 있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조성관)고 한다. ‘찰스 디킨스의 비밀의 서재’는 알고 보면 재미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디킨스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따분할 수 있다.

표준시를 정한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는 곳, 트라팔가 해변의 태번은 1837년 개업했다. 그곳에는 해군 왕립사관학교가 있는 군항이었다. 트라팔가 해전, 호레이쇼 넬슨 제독은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파해 개가를 올렸다. 트라팔가 광장 한복판에는 넬슨 제독의 등신상이 우뚝 서있다. 1805년 10월 21일 56척 대 70척. 세계해전사 최고 명장은 단연 충무공 이순신이다. 트라팔가 해전 따위와는 아예 비교가 안될 만큼 울돌목해전의 전과는 눈부시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바다를 주름잡는 해군들이 한결같다.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동상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 팔이 없다. 47세를 살다간 영웅적인 외팔이 제독은 키가 그리 크지 않다. 넬슨의 전승으로 인해 나폴레옹은 잉글랜드 섬의 정복을 포기하고, 대륙 정벌에만 힘을 집중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영국은 여유를 갖고 5대양을 향해 거친 파도를 헤치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건설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디킨스가 자주 찾던 트라팔가 태번의 대표 메뉴는 뱅어튀김 요리(whitebait dinner)다. 데이비드 카퍼필드 영화에도 그곳이 무대로 나오기도 한다. 넬슨 제독이 남긴 명구. ‘Time is everything…five minute makes a difference between Victory n Defeat!’ 그렇다 결국 시간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단 5분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법이다. 시간은 흐르는 걸까? 아님 돌고 도는 걸까? ‘변하지 않는 게 없다, 모두가 죽는다’는 것만 변하지 않을 뿐…

거듭 찰스 디킨스라는 천재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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