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간단한 부탁’ 정현종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보로디안카의 폭격 맞은 건물 사이를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지구의 한쪽에서
그에 대한 어떤 수식어도 즉시 미사일로 파괴되고
그 어떤 형용사도 즉시 피투성이가 되며
그 어떤 동사도 즉시 참혹하게 정지하는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저녁 먹고
빈들빈들
남녀 두 사람이
동네 상가 꽃집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의 감동이여!

전쟁을 계획하고
비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이여
저 사람들의 빈들거리는 산보를
방해하지 말아다오.

저 저녁 산보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되도록
내버려둬다오.
꽃집의 유리창을 깨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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