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미는 새끼를 잡아 먹지 않을까?
수컷 사자가 무리를 장악한 후 암컷의 새끼를 죽이는 사례나 수컷 원숭이가 무리를 이끈 후 암컷의 새끼를 죽이는 사례는 흔하게 보고 된 바 있다.이는 성미가 급한 수컷이 암컷으로 하여금 빠른 시일 내에 발정 나게 하여 자신의 새끼를 얻고자 함이다. 하지만 암컷의 입장에서 보면 그 힘든 임신과 출산, 양육을 한 수고를 하루아침에 무용지물로 만드는 수컷 우두머리가 밉기만 하다. 이에 대한 역공으로 암컷은 개방적인 성 전략을 택함으로써 “너만 있지 않아”라고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서 혹여 수컷이 자기 새끼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야생 침팬지는 평생 다섯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지만, 암컷은 수컷 수십 마리와 6,000번 이상 교미를 한다는 보고도 있다. 특히 배란기에는 더욱 심해 하루에 30~50회 섹스를 한다. 또 다른 암컷 침팬지인 바바리마카크는 무리 수컷 개체수 11마리 모두와 17분마다 교미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개코원숭이는 더 유별나 암컷이 발정기에 접어들면 성욕이 너무 강해 수컷이 도망갈 정도로 조른다고 한다.
동물세계에서는 “여성은 요조숙녀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성 선택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 치열한 다툼은 물론 암수 서로 우위를 점하려 한다. 즉 그들의 진화의 메커니즘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결론은 ‘암컷이 궁극적으로는 수컷을 선택하여 자신이 원하는 강한 종의 정자를 얻게 한다’는 사실이다. 즉 승리는 암컷에게 돌려 마땅하다.
암컷은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죽일 것인가?” 하는 냉혹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우리에게 암컷은 영원한 모성으로 그 어떠한 경우라도 “새끼를 돌보는 희생정신이 강하다”고 알아왔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질문이다.
“새끼 돌보기 행동을 촉진하는 회로는 암수가 모두 똑같지만, 실제로는 한 성만 실행에 옮기는 거예요. 그것이 갈라닌(galanin) 뉴런이며 그 반대로 새끼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뉴런은 우로코르틴(urocortin) 이지요. 이 둘은 상호배타적이어서 하나가 발현되면 다른 하나는 억제되지요. 둘을 동시에는 할 수 없는 거예요”
암컷은 새끼를 돌보거나 젖을 먹임으로써 먹이사냥을 두 배로 하여 체력 고갈이 쉽고, 자신의 생명마저 위태롭게 되며 이는 곧 다른 새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어설픈 도덕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늘 자연을 대하면서 진화 관련 글을 읽으면 ‘새끼를 죽이는 포기의 힘’과 ‘새끼를 기르는 희생의 힘’이 앙상블을 이루어 종(種)이 번식한다는 사실에 서늘한 느낌 마저 든다.
인간이라는 종(種) 역시 파충류 시절 만들어졌던 R-영역과 포유류 시절 만들어졌던 변연계,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 시절 만들어졌던 대뇌 피질로 진화되어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여성이 산후 우울증으로 자식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나 결혼 후 의무와 책임감 없는 수컷들의 행동을 볼 때마다 결혼에도 ‘자격증’을 부여해야 한다고 내 딴에는 열을 올리지만, 진화적 사실에 눈을 뜨게 되면 좀 더 분명한 견처(見處)를 얻을 수 있다.
가령, 동물 세계에서 출산은 암컷의 영원한 임무가 맞지만, 양육은 새끼가 젖을 떼면 수컷이 도맡아 하는 경우가 더 많아, 조류의 커플은 90%가 서로 양육을 분담하며, 물고기의 경우 3분의 2가 전적으로 수컷이 담당한다.
또한 인간만큼 엄격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신분 질서가 있는 개코원숭이 경우 신분이 높은 엄마를 둔 새끼는 그렇지 못한 새끼보다는 훨씬 더 오래 생존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신분 상승을 위한 살해, 학대, 유기, 위협, 전략적 유대 등 피나는 내부경쟁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태어날 때 어미의 지극한 보살핌이 없는 새끼는 성체가 되었어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실을 다시 한번 되새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참고 및 인용: 루시 쿡 지음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암컷들> pp.213-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