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집을 지으며 마당에 모란을 꼭 심고 싶었다. 첫해 한송이를 피우고 지난해는 꽃을 피우지 못했는데 올해 빗속에 탐스런 모습을 보인다. 품종은 백화선. <글·사진 이순선 전 인제군수>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출처 <영랑 시집>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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