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출장길 한동훈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7일 오전 출입국·이민 정책과 관련한 협력체계를 갖추기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유럽 출장을 가고 있다. 한 장관은 이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들고 출국했다. 이 책은 2500여년 전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쓴 것으로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전쟁을 서술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7일 출입국 이민정책 논의를 위해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에 나타난 패셔니스타는 검정색 슈트를 입었지만 그게 아니다. 언론의 눈길은 단연 그가 품 옆에 낀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 쏠렸다.

시간 때우려고 집어든 책이겠지만, 그걸 들고 나타난 건 차원이 다르다. 그건 언론을 향해 이미지 정치, 즉 정치 마케팅을 시도한 거로 난 본다. 펠로폰네소스전쟁사는 2500년 전 신흥국 아테네와 전통 강국 스파르타가 지배권과 문명의 표준을 놓고 다툰 전쟁의 디테일을 담고 있다.

내용이야 네이버나 구글 검색, 요즘 뜨는 챗GPT만 봐도 아니 생략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안가에선 시바스 리갈, 농촌에선 라이방 끼고 막걸리를 마셨다.

정의당 초선 류호정은 등이 패인 원피스에 타투까지 하고 의사당에 나타났다. 28만표로 이재명의 애를 태웠을 허경영의 정치 마케팅도 놀랍기만 하다. “국가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이다”라는 카피 말이다.

“똥을 싸라, 그러면 유명해지고, 유명해지면 똥 싸도 박수 받을 것”이라는 정치 마케팅.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 대해 “제국의 흥망, 이질적인 두 사회와 삶의 방식의 충돌, 인간사에서 지성과 우연의 상호 작용, 리더십의 가능성과 한계를 알려준다”는 ‘썰’도 있다.

동양에 사마천이 있다면, 서양에 투키디데스가 있다. 7일부터 15일까지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등 3개국을 방문할 한동훈 장관.

그는 서유럽 대표국들의 출입국 및 이민 정책을 살필 예정이다. 8일 프랑스 파리의 내무·해외영토부와 이민통합청, 9∼1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법무안전부와 이민귀화청을 각각 방문한다. 

13∼14일엔 독일 베를린 연방내무부와 뉘른베르크 연방이민난민청 등을 찾아 관계자들을 만나 정책 참고를 할 예정이다.

그는 취임 초부터 “이민 출입국 정책은 국가 백년대계로 준비되고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한동훈 장관이 브리핑한 법무부 업무보고 주요 내용 중 하나가 ‘출입국·이민관리청’ 신설이었다.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이 먼저 국가보훈부 승격과 함께 이뤄졌다. 법무부 추진 출입국이민관리청과 업무가 중복 혹은 충돌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한동훈 장관이 업무에 국한해, 기술적(테크니컬) 고려만으로 출장을 결행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거다.

마케팅 전략 중 하나가 STP 전략이다. 세분화(Segmentation)와 타깃 설정(Targeting) 후 어떻게 소구(Positioning) 할 건가?

정치 마케팅에서도 왕왕 써먹는 수법이다. 한동훈에게 펠로폰네소스전쟁사는 어떤 의미로, 아니 어떤 도구였을까?

지금 그는 피 튀기는 전투, 아니 훨씬 더 심각한 전쟁 중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2차 구속영장과 앞서 있을지 모를 불구속기소까지 말이다. 검찰이 실무를 맡아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검찰을 지휘한다. 큰 틀에서 전투가 아닌 전쟁의 시기와 완급을 비롯한 주요 전략을 짤 거다.

그런 와중에 다소 한가하게 보이는 유럽 출장이라니… 한동훈의 발걸음에 당장 더불어민주당은 발끈했다. ‘정순신 낙마’ 인사검증 책임을 져야 할 사람 운운해본들 닭 좇던 개 신세다. 역시 민주당 율사 출신의 국회의원들보다는 머리 좋은 한동훈 장관이 두어 수 위다. 박범계를 비롯, 김남국 이수진 최강욱 등 법사위 야당 국회의원들은 그에게 당하고 만다.

붉은 표지 <펠로폰네소스전쟁사>로 다시 한번 어퍼컷을 먹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 어퍼컷, 이재명 대표는 하이킥 세리모니를 선보였다. 이 정치마케팅 결과는 고교 때 권투를 몇 개월 해본 윤통의 압승이었다. 398일 남은 내년 4월 10일 총선에서 한동훈 장관은 출마할 것으로 나는 본다. 내가 윤통이라면, 그를 출마시켜 언론 관심과 바람을 일으키게 만들 거다. 윤통이 정치를 모르면서 잘 아는 척하는 걸로 여기는 사람들도 꽤 있다.

10개월여만에 후보와 대권까지 차지한 정치적 압축 성장에 빈틈은 있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번 말했지만, 윤통은 유도를 비롯해 운동을 해봐 타이밍을 안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기도 하다.

거대야당은 윤통이나 한동훈이 특별수사로 잔뼈가 굵어 ‘정치적’이라고 씹는다. 맞는 말일 거다. 그것을 뒤집어 말하면 “정치감각이 있다”는 말이다. 동물적으로 해야 할 때와 멈출 때, 전투와 퇴각할 시점을 안다는 거다. 상대 힘을 역이용할 줄 아는 윤통도 그렇지만, 한동훈 역시 수가 빼어나다.

그러니 치고 빠지면서 STP 전략으로 가볍게 아군쪽 눈길을 붙든 거다. 펠로폰네소스전쟁사로 말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기원 전 480년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는 100만 대군을 이끌고 2차 침공을 시도한다. 일설에는 170만이라고도 하지만 사가들은 50만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한다. 물론, 50만이라도 당시로서는 초유의 대군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군대도 480년 살라미스에서 아테네가 이끄는 해군에 참패했다. 그 다음해인 479년 플라테아전투에서 또 지면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로써 그리스는 자유와 독립을 지켜 그 후 50년간 황금기를 맞이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부터 에스킬루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페데스 등 극작가, 역사의 헤로도투스 등 서양 학문과 예술의 뿌리는 이때부터 자라났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했던 그리스는 순식간에 몰락으로 접어든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이라 부르는 그리스 도시국가 간 내전 때문이었다. 페르시아에 맞서 그리스를 지킨 양대 축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주도권 싸움 탓이었다. 전쟁의 발단은 코시라라는 작은 도시국가. 코린트 식민지 코시라가 반란을 일으키자 코린트는 진압에 나서려 했다. 불안을 느낀 코시라가 아테네에 도움을 요청하자 아테네가 수락한다. 코시라는 파멸을 면했지만 이번에는 코린트가 불만을 품게 된다.

코린트는 동맹국 스파르타에 도움을 요청, 결국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 혈투로 번졌다. 당시 무력 최강의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부상한 아테네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 게 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긴 하다.

30년에 걸친 전쟁의 결과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꺾고 승자가 되긴 한다. 그러나 기력을 소진하고 신흥 강자 테베에게 일격을 당해 패망한다. 테베 역시 ‘야만족’으로 깔보던 마케도니아에게 무너지고, 그리스는 쇠퇴일로를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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