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N 특집-코미디①] 서양 코미디···아테네서 셰익스피어, 채플린 거쳐 ‘미스터 빈’까지
절대권력과 사회모순 풍자로 대중들 사랑 독차지
[아시아엔=알레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코미디란 일반적으로 연극, TV, 영화, 스탠드업 코미디 혹은 다른 매체를 통해 웃음과 재미를 유발하는 모든 담론 및 작품을 말한다. 그렇다면 코미디는 언제 어디서 탄생한 것일까?
‘코미디’라는 단어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했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시인들의 정치풍자가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 희극은 두 그룹 또는 대립관계에 있는 집단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아테네 희극은 초기, 중기, 후기의 세 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전기희극(~BC 510년경)은 악의적인 욕설로 구성된 디오니소스적 인간들(Dionysian revelers)의 외설스러운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아테네에서 코미디는 기원전 486년 축제와 행사의 일부분이 되었고 최고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상이 주어졌다. 초기 작품 중 비극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정도가 남아있다. 당시 작품들은 코미디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중요인물과 권력기관을 풍자해 이후 희극인들의 롤모델로 여겨진다. 아테네에서 코미디는 극장과 관련된 와인과 환락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념하여 두개의 주요 축제에서 공식 상연됐다. 축제는 펠로폰네소스전쟁으로 인한 재정압박으로 한동안 3인 무대로 축소되기도 했지만, 주로 5명의 코미디극작가 혹은 시인이 연극 한편에 매달렸다.
극작가 혹은 시인들은 축제책임자에게 참가 신청을 하며, 선정된 사람들은 부자들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전기희극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는 아리스토파네스였다. 그의 작품은 매혹적인 정치풍자와 성적인 풍자가 주를 이룬다. 소크라테스를 광대로 묘사한 <구름>과 <개구리> 등의 작품을 남겼다.
중기희극은 에스킬러스, 소포클레스, 호메로스, 핀다로스, 그리고 시모니데스 등이 대표한다. 이들은 섬세한 언어와 대담한 풍자로 멋진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취급했다. 사회를 다룰 때는 평범한 개인보다는 매춘부, 술주정꾼, 유흥에 빠진 놈팽이, 그리고 자만심으로 가득찬 요리사같은 사람들을 소재로 했다.
그리스 후기희극은 BC 260년경까지 계속된다. 이 시기 작품들은 남아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최초로 인간의 사랑을 주제로 다뤘다. 후기희극은 세넥스 이라투스와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악과 어리석음, 횡포, 자만심 등으로 가득한 캐릭터를 다뤘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도 자주 연극에 등장하고 있다.
서양 희극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며 또 다른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광대가 바로 그것이다. 광대들은 시장터에 모여있는 대중들을 위해 순회공연을 하곤 했다. 광대들는 종종 밝은 색의 옷과 특이한 모자를 착용하고 등장한다. 요즘 광대들의 모습은 중세의 그들을 모방한 것이다. 광대는 노래, 스토리텔링, 곡예, 저글링, 그리고 마술 같은 다양한 기술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코미디 스타일로 진행하거나 잘 알려진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농담과 풍자가 주류를 이뤘다.
코미디의 개념은 엘리자베스 시대(1558-1603)에 다시 한번 크게 바뀐다. 셰익스피어의 등장이다. 그의 희극은 캐릭터보다는 상황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극에서 보여지듯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젊은 연인들의 눈물겨운 분투, 이별과 재결합 등을 다루었다.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 Commedia dell’arte 즉 ‘코미디 예술’이 나의 고향 이탈리아에서 등장했다. 그것은 전 유럽에서 유명한 극장 형식의 전문 코미디극장에서 하는 예술 장르를 말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보같은 노인, 악의적인 하인 또는 자만심 가득한 군대장교 등과 같은 캐릭터였다. Commedia의 기원은 베니스의 카니발과 관련 있다는 학설이 많다. 1570년 작가 겸 배우 안드레아 칼모는 <노인> <판탈로네> 등의 작품을 남겼다. 이와 함께 나폴리에선 한국의 심형래 같은 ‘풀치넬라’가 등장해 시대를 풍미했다.
배우 찰리 채플린과 ‘미스터 빈’이라는 캐릭터를 빼놓고는 코미디 역사를 완성시킬 수 없다. 20세기에 활동한 채플린과 미스터 빈 모두 영국태생이다. 코미디언, 프로듀서, 작가, 감독, 작곡가 등 여러 직함이 붙는 채플린은 20세기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무척이나 유명한 작가이다. 예를 들어 <위대한 독재자>는 1940년 발표된 코미디 영화로 채플린이 감독과 배우를 겸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채플린의 대표작으로 주저없이 꼽고 있다.
한편 로완 앳킨슨과 리처드 커티스가 1990년 공동제작한 영국 시트콤 <미스터 빈>은 현대 코미디의 대표작으로 불린다. <미스터 빈>은 앳킨슨이 옥스포드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개발한 캐릭터다. 그는 ‘미스터 빈’에 대해 “성장한 남성의 몸속에 있는 어린 아이”라고 말했다. 주인공은 생활 속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그는 말수가 없고, 그 자신만의 독특한 해결책과 대처 방법을 선보인다. 바로 시청자들이 재미와 쾌감을 느끼는 이유다. 미스터 빈은 5년간 TV시청자를 끌어모았는데, 1992년 발표된 <미스터 빈과의 문제>는 1874만명이 시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