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새 발굴 문화유산 ‘청평승평계’ 어떻게 빛낼 것인가?

청풍호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역사와 기본 속성 및 개요를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청풍승평계’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알려져 있다. 백과사전식으로 소개한다.

청풍승평계 재연

1. 청풍승평계 개요

청풍의 유지 33명이 이곳 출신 우륵(于勒)의 음악예술을 계승하기 위하여 1893년(고종 30년) 청풍승평계(淸風昇平稧)를 조직하였다. 우리나라의 고전음악 506률을 전승발전시키기 한 것도 목표였다. 이어 1918년 속승평계(續昇平稧)를 재조직한 43명은 후세에 계승유지 시키기 위해 보다 정교하게 국악단을 구성하여 훈련시켰다.

청풍승평계 조직은 수좌(首座), 통집(統執), 주찰(周察), 부주찰(副周察), 영사(領司), 부영사(副領司), 교독(敎督), 총율(摠律), 율원(律員) 등으로 구성됐다. 청풍승평계의 율원은 매월 16일 전원이 한벽루(寒碧樓)에 모여 음악 53장(章)을 연습했다.

이들이 사용한 악기는 풍류가야금(風流伽倻琴), 산조가야금(散調伽倻琴), 양금(洋琴), 현금(玄琴), 당비파(唐琵琶), 향비파(鄕琵琶), 피리, 젓대, 단소(短簫), 장고(杖鼓) 등의 관현타악기로 알려졌다.

지금부터 129년 전인 1893년 청풍승평계 율원들은 규약에 따라 아래와 같은 생활을 했다.
-매월 16일로 정하여 교련하며, 10냥씩 갹출해 악기를 구입하고 수리 및 보수에 사용했다.
-매년 봄가을 전 회원이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유람하되 술주정과 싸움은 중벌로 다스렸다. 특히 젊은 회원이 연장자를 능멸하고, 강자가 약자를 업신여기는 경우 엄벌했다.
-율원들은 또 애경사에 부조금을 거두어 위로하거나 축하했다. 벌칙금 납부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계(稧)에서 내보냈다. 계원들은 서로 돈을 빌리지 말고, 보증도 서지 말도록 했다.
-수좌(首座)는 최고령자로 정하고, 통집(統執)은 좌상(座上) 가운데 정하고, 주장(主章)은 모든 사람의 크고 작은 사무를 모두 감독한다. 교독(敎督)은 기악(妓樂)과 가무(歌舞)를 조련교습에 총감독을 살핀다.
-총율(摠律)은 율원(律員) 가운데 최고로 능한 사람을 살펴 맡긴다. 수주찰(首周察)은 대소 사무와 재물을 맡아 잘 살펴 검사한다. 부주찰(副周察)은 수주찰이 위임하는 일을 살피며 상영사(上領司)는 재덕(才德)있는 풍소(風騷)의 일에 익숙한 숙련자로 연회를 총찰한다. 부영사(副領司)는 상영사가 위임하는 일을 보좌한다.
-율원은 모두 33인으로 구성되며 비록 외부인이 입회를 원하는 자가 있더라도 규칙을 고쳐서 입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청풍승평계 단원이던 이태흥(李泰興·1871~1940년) 4대 후손 이화연 선생(중앙)은 1997년부터 코로나19 유행 이전까지 경기도 성남농협농악단에서 징과 꽹과리 파트를 23년간 담당했다. 그는 증조할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 받았다.(사진=이화연 선생 제공)

청풍승평계는 일제강점기에도 명맥을 이어가며 국악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6․25전쟁으로 악기가 대부분 유실됐다. 그후 일부 양금(洋琴) 등은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평등사에 보관되었으나 충주댐 수몰로 모두 유실되었다.

2. 청풍승평계의 재발굴

2022년 4월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379회 이달의기자상 시상식이 열렸다. 한국기자협회 전국 199개 회원사의 기자들이 매달 출품하는 80~90편 가운데 6~7편이 선정되는 이달의기자상에 ‘128년 전 제천서 조직된 국악단체 국내 최초 국악관현악단 타이틀 관심’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바로 중도일보 손도언 기자의 피땀 어런 수작(秀作)이었다. 이 보도는 2021년 11월부터 2022년 3월까지 15회에 걸쳐 1893년 제천시 청풍면에서 조직된 국악관현악단 ‘청풍승평계’의 존재를 집중 조명했다.

당시 시상식에서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청풍승평계는 1926년 창단된 국내 최초 서양식 오케스트라 중앙악우회 보다 33년 앞선 것이며 국내 공식 최초 국악관현악단인 서울시관현악단(1965년)보다 72년 빠른 것”라며 “손도언 기자가 우리나라 국악계 역사를 새로 썼다”고 했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손도언 기자는 청풍승평계 실체가 수몰지역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후손들의 구술 증언을 토대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50여명이 넘는 취재원의 심층 인터뷰해 128년 전 국내 최초 국악단의 실체적 진실에 근접했다”고 덧붙였다.

제379회 이달의 기자상 시상식장에서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왼쪽)과 나란히 선 손도언 기자

다음은 청풍승평계 존재를 새롭게 발굴한 손도언 기자의 취재후기다.

지난해 11월 중순 한 취재원이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국악단체가 제천시에 존재했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의 주장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일단 제천시는 국악의 고장이 아니다. 무엇보다 석탄과 시멘트, 잿빛도시 등의 부정적인, 즉 삭막하고 딱딱한 도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이런 도시에서 국악단체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사실 여부, 즉 ‘확인’은 해야 했다. 제천시청 문화예술과로 달려 갔다. 그러나 문화예술과 직원들뿐만 아니라 대부분 제천 시민들은 이 내용에 대해 몰랐다.
제천지역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서적은 없을까.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이 작년 12월 서울의 한 골동품 상점에서 구입한 <제천군지>(1969년 제천군지편찬위원회 편찬)을 안고 있다.


그런데, 서적이 존재했다. 바로 1969년 제천군지 편찬위원회가 편찬한 ‘제천군지’다. 며칠 동안 한자사전을 찾아가면서 내용을 파악했지만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결국 한문학자에게 의뢰했다. 의뢰결과 취재원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국악단체가 제천지역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단체 청풍승평계였다’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망치로 크게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제천 국악단체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제천 국악단체가 존재했던 지역은 ‘내륙의 바다인 청풍호’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청풍호는 수몰됐고, 수몰지역이 제천 국악단체 청풍승평계 창단 장소이자, 근거지였다. 기록만 있을 뿐 국악 악기 등도 모두 물속에 잠겼다. 제천시 청풍호반을 매일 찾다시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작정 운전대를 청풍호로 돌렸다. 청풍호 인근 지역민을 만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종일, 물속만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낯선 인물이 알려준 이름 석 자 ‘이금복’. 이금복은 청풍승평계 단원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이금복은 사망하고 없었다. 이금복의 후손을 찾아야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석 달 만에 청풍승평계 4대 후손인 이금복씨 딸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청풍지역에서 국악단체가 실제로 존재했고 증조할아버지에게 실제로 들었고 가야금과 거문고, 대금 등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의 제적등본을 입수해 제천군지의 기록과 대조했는데, 100% 일치했다. 모든 게 사실이었다.

위의 취재후기를 쓴 손도언 기자는 이날 시상식에서 이런 소감을 밝혔다.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

“제천은 산간지역 시멘트의 도시라는 딱딱한 이미지를 갖고있는 데 이곳에서 128년 전에 우리나라 최고(最古) 국악 단체가 창단돼 국악, 문화, 인문학을 꽃피웠다는 사실을 집중보도 했다는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다. 중도일보 연속보도로 인해 청풍승평계가 우리나라 문화계 국악계는 물론 언론계에서까지 좋은 평가와 성과를 얻은 것 같아 매우 영광이다.”

3. 청풍승평계 재발굴 이후 움직임

(1)2022년 4월 24일자 뉴시스 보도

[제천=뉴시스] 이병찬 기자=제천 청풍도호부에 있었던 우리나라 최고(最古) 국악단 ‘청풍승평계’ 발굴 사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충북 제천시는 제천문화원을 통해 ‘제천 청풍승평계 뿌리찾기 학술 조사연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청풍승평계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도호부(청풍·수산·한수면에 있던 옛 고을)에서 활동한 국내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이다. 1965년 창단한 서울 국악관현악단보다 72년 앞선다.

1893년 창단한 청풍승평계가 악기와 연주자 등을 제대로 구성해 우리나라 고유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반영한 모국 음악을 구현했다는 사실이 최근 한 지방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역사와 국악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제천시 청풍면 읍하리에 128년 전 실존했던 것으로 알려진 청풍승평계 연습실은 지금 물에 잠겨 그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발굴한 옛 문서 등을 기반으로 제천이 예악과 국악의 본향임을 조명할 계획이다.

청풍승평계 기초자료조사와 뿌리찾기 학술용역을 추진하고, 학술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이를 토대로 영상자료와 자료집을 제작할 방침이다.

제천문화원 관계자는 “오는 10월까지 1차 조사 결과를 도출한 뒤 연내에 종합 학술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라면서 “문화와 예악의 고장 제천이 궁중 음악과 민속 음악 체계를 갖춘 국악의 성지였음을 증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천여행지


(2)제천시의회 관련 발언(2022년 2월24일)

1)하순태 당시 시의회 자치행정위원장

“제천은 ‘석탄, 시멘트, 철도, 잿빛도시’ 등 매우 딱딱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1893년, 제천 청풍지역에서 창단한 대규모 국악단체(청풍승평계)의 존재로 제천의 이미지는 ‘국악의 고장, 예술의 고장’ 등 밝은 이미지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893년에 제천 청풍에서 창단한 대규모 국악단체 ‘청풍승평계’가 128년만에 한 언론(중도일보) 보도로 처음으로 밝혀졌다. 청풍승평계는 아직 학술세미나 등으로 정확하게 고증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언론보도를 보면 128년 전 ‘청풍승평계’ 단원들의 4대 후손들이 구술증언을 하고 있다. 이 단체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국악계뿐만 아니라 제천 등 우리나라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제천지역의 이미지는 그동안 딱딱한 도시로 평가돼 왔는데, 시의 관광정책에도 영향을 줬다. 청풍승평계의 존재 가치를 전국에 알려, 국악과 예술의 고장 등 밝은 이미지로 만들어가야 한다.”

“서울 등 국악학계가 제천 청풍지역의 옛 국악단체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제천 청풍지역의 국악단체가 제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악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시가 적극적으로 고증할 필요가 있다.”

“지금 방송가는 국악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과 소통하고 있고, 이미 우리나라 국악은 ‘K-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시에서 (청풍승평계를) 심도 있게 검토해 세계 속에 제천을 알려 달라.”

이재신 의원


2)이재신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이재신 의원은 “청풍승평계는 우리나라 국악관현악의 원류로 적극 발굴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제천시가 점말동굴 등을 복원하고 있다. 가치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전말동굴뿐 아니라 청풍지역에서 창단한 청풍승평계 또한 가치 있는 발굴사업으로 본다. 언론보도를 보면 제천의 청풍승평계는 우리나라 국악계(국악관현악)의 원류로 보여진다.”

“청풍승평계를 적극적으로 발굴한다면 후손들에게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후손들도 우리의 역사를 승계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문화의 계승 발전이다.”

윤종섭 제천문화원장

3) 윤종섭 제천문화원장
윤종섭 제천문화원장은 “청풍승평계의 가치는 세계적이며 세계 어느 지역에 갖다놔도 따라오지 못할 독보적인 우리의 보물”이라고 했다.

중도일보 윤종섭 원장 인터뷰(2022년 3월 21일) 주요내용
“32년간 제천시청에서 근무했다. 1990년대 제천시 문화관광과장을 맡았는데, 그때 제천군지에서 청풍승평계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러나 청풍승평계가 어떤 단체인지 등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제천시는 문화유산사업으로 의림지와 울고 넘는 박달재 등 굵직하고 대중적인 문화유산만 연구했었다. 그래서 청풍승평계 등 땅속에 묻혔던 제천의 문화적인 자산은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현재 청풍승평계는 큰 보물적 가치를 지녔지만 그때만 해도 접근하지 못한 우리의 문화였다.”

“새로운 것, 국적 없는 문화 등은 뿌리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가장 제천적인 문화가 무엇이냐는 무척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제천시와 제천문화원이 주축이 돼 집중적으로 청풍승평계를 발굴해야 할 때다. 시민뿐만 아니라 국·내외 학자와 전문가 등이 하나가 돼 ‘제천시가 청풍승평계로 국악의 원류’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제천시와 문화원은 ‘제천 명품화’를 위해 청풍승평계 발굴 사업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국악학계 등이 충분하게 논의해 청풍승평계 실체를 인정한다면, ‘제천은 국악의 뿌리이자 국악의 고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제천이 음악의 고장, 그리고 국악의 고장이라는 점을 명쾌하게 답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충북 제천시가 충주댐 건설에 따른 청풍호 수몰 30주년을 맞아 2015년 6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청풍호(충주호) 30주년 사진전’을 개최했다. 사진은 수몰 이전 원래 자리에 있던 한벽루와 주변 풍경.

“제천의 경우 1995년 시·군 통합작업이 이뤄졌는데, 청풍지역은 역사적으로 제천지역보다 훨씬 더 문화와 예술적으로 깊은 지역이다. 청풍 ‘현’이 ‘부’로 되면서 ‘부’의 지방조직의 관료 직책도 현감보다 3등급이 높았다. 그리고 (중앙의)고위직 인사가 청풍부사로 왔을 정도다. 부사는 중앙에서 볼 때 인기 있는 직책이었다. 청풍지역은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나룻터 문화’로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청풍지역은 깊이 있는 문화와 예술 등이 이뤄진 곳이다. 또 문화도 다양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제천 쪽이 딱딱한 문화였다면, 청풍 쪽은 훨씬 부드러운 곡선문화였다. 지금은 통합됐다. 그러나 제천의 딱딱한 문화와 청풍의 곡선문화 등은 시대적으로 볼 때 소중한 문화였다. 이제는 과거와 현재의 미래를 혼합해 제천만의 자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청풍면 수몰지구

“제천과 청풍지역은 문화와 역사 등 소중한 자원들로 가득한 곳이다. 특히 문화적인 원류자원이 청풍지역에 많이 있다. 그래서 청풍승평계는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존재로 인식될 것이다. 청풍승평계가 세계화 됐을 때, 제천시는 청풍승평계로 경제와 지역 이미지, 관광, 문화 등 이전보다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 음악과 국악이라는 브랜드로 제천은 더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4. 청풍승평계 스토리텔링 어떻게?

1)극적인 발굴 과정
2)수몰지구의 재발견
3)130년 역사에 응축된 과거-현재-미래

5. 문화·관광자원화

중국 시안의 화청지에서 장예모 감독의 총연출로 공연되는 양귀비와 당 현종의 사랑이야기 ‘장한가’. 충주호(청평호)에서도 이같은 공연이 가능하지 않을까.

1)호수음악제

제천시 다문화 가정 성장지원 글로벌 리더스쿨 프로젝트

2)다문화오케스트라

국악과 양악의 만남

3)아나로그와 디지털 융합

제천역 옛모습

4)풍부한 과거와 비전의 조화

캐나다 스트랫포드의 셰익스피어 거리


6. 홍보

1)국내
2)해외
3)중앙亞에서 실크로드 타고 中 거쳐 한반도까지

청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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