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30년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다’

“예수님 제자들은 달랐을까요? 3년을 동고동락했습니다.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허망하게 십자가에 처형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예수님이 수 차례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얘기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듣는 것과 알아 듣는 것, 보는 것과 알아 보는 것은 다릅니다.” 그림은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93~1498년경)

*성경본문 마가복음 6-8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 6:3)

운동이든 음악이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을 가르치는 편이 훨씬 어렵고 힘이 듭니다. 이미 몸에 배어버린 이상한 습관과 사고의 틀을 고치는 것은 코치와 레슨생 모두에게 고생스러운 일입니다. 배움과 앎에 있어 최대의 장애물이 무식과 무지의 상태가 아니라 안다고 생각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고향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장 오랜 시간 봐왔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 때까지 무려 30년을 알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30년 동안 쌓인 거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인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목수 예수였지, 메시아 예수는 가당치도 않은 얘기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달랐을까요? 3년을 동고동락했습니다.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허망하게 십자가에 처형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예수님이 수 차례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얘기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듣는 것과 알아 듣는 것, 보는 것과 알아 보는 것은 다릅니다.

교회 오래 다녔다고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 오래 했다고 좋은 신앙인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야든 20년, 30년 꾸준히 하면 달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종교 달인은 있을지 몰라도 신앙생활에 달인은 없습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달인이 되는 것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이란 날마다 죽고 날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야 비로소 예수님에 대한 편견, 선입관, 선이해, 개인적 기대감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제자답게 살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다음에야 알아 듣고 알아 보기 시작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수년짜리, 수십 년짜리 편견과 확증편향을 신앙이라 착각하고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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