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소유’에 빼앗긴 ‘자유’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성경본문 마태복음 19-21장

“소유는 ‘무엇을 가졌는가’, 자유는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1-22)

예수님께 찾아온 부자 청년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청년에게 영생이란 자신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획득할 수 있는 개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가 누리고 있었던 대부분의 것들은 노력한 대가로 받은 보상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영생도 재물을 모으듯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영생을 일종의 소유로 여긴 것입니다. 영생을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소유에 관심이 있었지만 주님은 자유를 말씀하십니다. 부자 청년의 질문은 ‘무엇을 더 소유하면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소유가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유가 많으면 좀 더 여유로울 수는 있겠지만 자유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 아닌가요?

소유는 ‘무엇을 가졌는가’의 문제이지만 자유는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따라오라고 하시는 영생의 길은 더 많이 소유하게 되는 길이 아니라 더 많이 자유하게 되는 길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던 방식으로 영생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버리게 될 것을 진작에 버리지 못하면 결국 붙잡아야 할 것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부를 소유하듯 영생이나 구원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소유물로 인식하면 내가 소유함으로 누군가는 누릴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사상이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천국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겼습니다. 종교인 특유의 오만함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없는 것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인식, 소유물로 여겨서는 안될 것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태도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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