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리스’ 남녀의 로맨스 그레이···넷플릭스 ‘밤에 우리 영혼은’

“언제 우리 집에 와서 잘래요? <밤에 우리 영혼은> 한 대목.

미국 레거시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제인 폰다 주연

“괜찮으시면 언제 우리집에 와서 함께 잘래요?” 수십년 동안 알고 지내던 이웃 여자가 이런 돌발 제안을 한다면?

넷플릭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 2017)의 도입부.

미국 시골마을 홀트에 사는 70대 여성 에디 무어(제인 폰다 분)가 루이스 워터스(로버트 레드포드)의 집에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둘 다 오래 전 배우자와 사별했고, 아이들은 떠났다. 큰 집에서 쓸쓸하게 인생의 황혼을 지내는 중이다.

에디의 기습에 허를 찔린 루이스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자 에디는 물끄러미 루이스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한다.

“섹스를 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밤을 견뎌보려고 그래요.” 둘은 40여년 동안 넘어지면 코 닿을 이웃동네에서 살아왔다.

집안 간 대소사도 잘 알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지켜봤다. 하지만 정작 서로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고 데면데면 했다.

“그쪽이 제안한 걸 한번 생각해봤는데, 해보고 싶어요.”

다음 날 밤, 용기를 내 에디의 집을 찾아가 노크를 한 루이스. “왜 나인가요?”(루이스) “좋은 사람 같아서요.”(에디)

둘은 연인처럼 침대에 나란히 누워 얘기하는데 차츰 익숙해간다.

그러나 ‘섹스리스(Sexless)’, 친구인지 연인인지 모를 묘한 관계다. 시작만 ‘에디의 돌출 발언’으로 파격이었을 뿐이다.

영화는 차분하게, 아니 잔잔하게 너무도 고요하게 흘러만 간다. 두 사람은 마음 속 깊이 숨겨 뒀던 회한과 상처까지 끄집어낸다.

젊은 시절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중도 포기한 루이스의 좌절한 꿈. 딸 코니를 교통사고로 떠내보내고 가슴이 찢어진 에디의 사연도. 루이스는 에디의 채근에 바람 피운 과거사까지 마침내 털어놓는다.

영화는 갑자기 손주를 맡아 키우게 된 사건 아닌, 사건 말고는 특별한 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켄트 하루프의 원작소설도 두 사람 간 대화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밤에 우리 영혼은>

에디에게 간 첫날, 루이스는 양치를 하고 가장 깔끔한 옷을 입는다. 누군가의 눈에 띌까봐 눈치를 보며 뒷문으로 슬며시 찾아갔다. 에디는 “내일부터는 앞문으로 오라”고 젊잖게 타이르듯 말한다. 얼마 남지도 않은 생인데, 언제까지 남의 눈치나 보겠느냐는 거다.

“어차피 알게 될 거고, 떠들어 되기도 하겠죠. 상관 없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에디는 그렇게 살았던 걸 후회했다.

당근 두 사람은 마을사람들 가십거리로 입길에 오른다. 루이스의 친구들은 둘의 사이를 은근히 조롱하기도 한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역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용감하다. 에디는 마을사람들 보란 듯 튀는 진홍색 옷을 입고 외출한다.

마을 중심가로 나가 용감하게 데이트를 하는 에디와 루이스. 이왕 남의 눈치나 보며 인생을 살진 않기로 결심한 마당이다.

팔짱을 끼고 길을 걷는 두 노인의 로맨스 그레이가 상큼하다. 둘의 발걸음에선 10대 청춘들의 데이트인 양 경쾌함이 느껴진다.

침대에 남녀가 같이 누워있지만, 아무 일도 없는 연속이었다. 이웃 선배 할머니가 함께 마실 나가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미소로) 뭘 궁금해 하시는지 알지만, 우린 그런 것 안해요!”(에디)

그러나 반전이 닥쳐온다. 딸을 잃고 방황한 과거의 에디로 인해 상처받은 아들과 화해를···. 더 나가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전설의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의 젊은 시절을 기억한다면···.

그냥 편하게 보다보면 엔딩 사인이 오른다. 약간 졸릴 수도 있지만, 아무튼 즐감 권한다.

둘은 1967년 <맨발로 공원을>에서 신혼부부 역으로 함께 출연했다. 꼭 50년 지난 2017년, 이 영화로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한 제인 폰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오랜만에 연기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로버트는 키스를 정말 잘하는데, 20대에 그와 키스하고 80이 다 돼 또다시 키스를 하게 된 게 참 재미있었어요!”

80대 중반, 원로배우 둘의 레거시(Legacy) 연기가 돋보인다. 메가폰을 잡은 감독 리테쉬 바트라 연출도 탄탄하고 자연스럽다. 

영화를 보고난 뒤 드는 생각이다. 시종 잔잔한 내해를 순풍에 미끄러져 가는 요트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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