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이 ‘성리대전’보다 ‘국어사전’을 만드셨다면

훈민정음

요즘 교육부에서 음악교육에 있어 국악 교육과정을 축소하려는 계획서가 나와서 국악계가 시끄럽다. 학교 음악교육 과정에 국악교육이 겨우 안정화 시점에 들어서려고 하는데 또 찬물을 끼얹으려고 한다. 사회 문화 예술 역사 각 분야에서 이러한 현상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우린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영화 나랏말싸미

세종대왕은 한자를 신봉하는 관료들의 혹독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창제하였다.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진영의 논리는 “우수한 선진 문자인 한자가 있는데 왜 한글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세종대왕이 그들의 말을 따라 한글 창제를 포기했다면 지금 우리 문화의 신세가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세종대왕은 전해오는 우리 말법에 음운론을 근거로 글자의 원리로 유용하여 창제하셨다. 즉 우리의 철학과 문화 정신이 담긴 말법을 바탕으로 창제하신 거다.

한글 반포 후로 대학자 이황 이율곡 정약용 등 수많은 철인들이 태어났어도 그들은 한글을 무시하여 사용하지 않았고 오로지 한자만 숭상했다. 만약에 그분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하셨던 성리학의 100분의 1만 한글 사업에 힘을 기울여 주었다면 우리의 언어학은 세계 언어학의 큰 틀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어사전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영화 말모이 포스터

세종의 한글 창제 이후 400년 넘도록 조선의 대학자들은 오직 성리학에만 몰두했다. 나는 감히 생각한다. 만약에 퇴계 선생이 성리대전보다 국어사전을 만드셨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우리의 기득권 세력들은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사용한 것들을 우리 스스로 무시하고 왜곡하고 천시해왔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정통한 것들은 모두가 기득권 중심이 아닌 민간의 풍습적인 놀이와 문화를 통해 이어져왔다. 언어와 음악과 춤과 농악과 같은 문화가 대표적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남의 것을 가져다 배우고 익혀서 그것을 통해 백성을 통치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조선의 대학자들은 대학의 강령 중에 나오는 본래 원문인 재친민(在親民)을 재신민(在新民)으로 바꾼 주자학에 따라 백성을 가르치고 교화하고 계급통치를 철저하게 꾀하였다.

친민(親民)은 백성과 함께하려는 평등정신이고, 신민(新民)은 백성을 가르치고 교화하려는 차별의 뜻이 담겼다. 세종대왕은 그와 반대로 친민(親民)를 한사코 염두에 두어 백성을 어여삐 여겨 한글을 창제하신 거다.

조선에는 팔천(八賤) 계급이 있었다. 사농공상의 계급을 따져 귀천의 구별을 두어 여덟 부류에 종사하는 사람을 팔천 계급으로 차별하였다. 지금 장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승려와 나 같은 광대들이 그 팔천 계급에 속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BTS나 손홍민 같은 훌륭한 애국자들이 그때 당시에는 팔천 계급에 속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역사는 언제나 기득권이 망쳐놓고, 민초들이 이를 재건해서 끈끈하게 유지해왔다. 멀리 볼 것 없다. 지금 우리 사회 현실도 보면 기득권의 엄청난 무지와 파렴치함으로 흥망의 부침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천한 무리는 누굴까?

우리 문화는 우리의 목숨줄이다. 감히 누가 그 목숨줄을 건든단 말인가? 국악은 수천년 외세 침략과 환란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우리의 목숨줄과 같은 것이다. 제발 정신 차려야 한다. 나라 살림을 자산들 맘대로 거덜 내도 우리의 목숨줄만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된다. 머지않아 한국어도 영어로 쓰자고 할까봐 걱정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문화를 부정하는 행위는 제 부모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와 다름 아니다. 제발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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