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묵상] 남한테 격분을 사는 태도

“내가 가진 평범함마저도 누군가에게는 한 번만이라도 누려보고 싶은 사치일 수 있습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있습니다. 있으면 좋지만 굳이 없어도 괜찮은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꼭 있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누군가는 그걸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있는데,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림 속의 떡과 같다는 것입니다.

한나에게 ‘자식’이 그랬습니다. 불임 여성이었던 한나는 아이 한번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나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브닌나는 너무 쉽게 누리고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다 있는데 나에게만 없으면 굉장히 서럽습니다. 힘듭니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잘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않냐”고 위로하지만, 한나는 그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남편 한 트럭이 있어도 아들 하나만 못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사실 한나는 아들을 갖지 못하는 설움이 있긴 했지만, 그 설움만 있었다면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며 나름 잘 견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한나의 설움을 극도로 증폭시키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브닌나입니다. 성경은 브닌나가 매년 여호와의 집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갈 때마다 한나를 격분시켰고 한나는 그 일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기까지 했다고 기록합니다.

만약 여기서 브닌나가 엘가나처럼 말할 줄 알고, 엘가나처럼 행동할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가진 자의 태도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브닌나가 한나를 격분하게 만드는 시점이 매년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는 길이라는 것은 우리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소하더라도 우리 각자에게는 남이 가지지 못한 면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습니다. 단순히 재물이나 사회적 지위의 여부를 떠나서 나는 저 사람보다 시간이 조금 더 많을 수도 있고, 성경 지식이나 영적 체험이 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가진 평범함마저도 누군가에게는 한 번만이라도 누려보고 싶은 사치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거나 못나누거나를 말하기 전에 적어도 우리의 태도가 브닌나와 같지는 않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세상을 향한 교회와 성도의 태도는 어떤가요? 구원과 진리를 우리만 소유하고 있다는데서 느껴지는 영적 우월감이 세상의 격분을 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석문섭 목사의 오디오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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