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남쪽 광화문, 용산 아래 한강 그리고…
국방부에 근무하면서 우연히 안기부에 근무할 기회가 있었다. 김영삼 시대에 남산과 이문동에 있던 국가안전기획부가 세곡동으로 이동했다. 대한통운에서 차량과 이사꾼들이 와서 반나절 만에 이사를 끝내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필자는 국방부에서 20년을 근무했다. 이승만 시대 국방부는 후암동 병무청에 있었다. 이 시대 국방부는 이 정도면 되었다. ‘육방부’로 불리던 육군본부가 용산에 있었다. 국방부가 용산으로 이동한 것은 박정희 시대다. 자주국방이 진전함에 따라 국방부의 기능과 위상이 확대했다.
노태우 시대 ‘한국 방위의 한국화’가 진행됨에 따라 현 청사로 이동했고 합참이 확대되었다. 그 후 한미연합사가 생겼다. 연합사가 평택으로 이동해서 세계 최대, 최고의 해외미군기지가 되었다. 현재 국방부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설비가 다 되어 있다. 대통령 집무실이 오더라도 충분하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이 떨어져 있어 기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데 용산에서는 한 건물에 들어갈 수 있다.
일제 이후 용산은 체계적으로 개발되어 왔다. 8군사령부 자리는 일제시대 조선군사령부가 있던 자리로 용산에서 제일 가는 명당이었다. 기병부대 자리가 아직 한 동 남아 있다. 해방 이후 8군사령부는 동숭동 서울대학교 자리에 있었다. 1979년 한미연합사령부가 생겨나서 주한미군 위상이 바뀌어졌다. 전작권이 전환되어 용산이 한국 방어의 중심이 되었다.
용산역이 서울역보다 고속 철도의 중심이 되었다. 용산의 철도공작창 자리는 넓은 공간이다. 앞으로 개발하면 용산이 맨해튼이 될 수 있다. 미군이 나간 자리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북악산을 안산으로 한 광화문이 한양 천도 이래 서울의 중심이었다고 하면 이제 한강을 끼고 있는 용산이 서울의 중심이 된다. 윤석열의 용산 시대는 그런 면에서 의의가 있다.